|
신동우 나노 사장(왼쪽 세번째)이 직원들과 제품을 앞에 놓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각형 모양의 탈질촉매제품은 환경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나노제공 | |
|
IMF 외환위기 여파로 경기가 고꾸라진 1998년.신동우 국립 경상대 교수는 진주 촉석루에서 남강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자들은 한 명도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편히 지낼 순 없지 않은가….'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 진주에 있는 경상대 교수로 부임했다. 평탄하게 교수생활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자식 같은 제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어 취업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이듬해 진주에서 ㈜나노를 창업했다. 직원은 졸업생 1명과 재학생 3명 등 모두 4명의 제자들.그로부터 근 5~6년 동안 가시밭길을 걸었다.
2002년 중반.서울에서 회의를 하던 신동우 나노 사장의 휴대폰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사장님 큰일났습니다. 공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공장장이었다. "이제 겨우 공장 가동에 들어갔는데 불이라니…"
그는 제자들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창업했다가 회사가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컴컴했다. 급히 비행기를 타고 진주 공장에 도착하니 매캐한 연기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아~~이렇게 우리 꿈은 물거품이 되는구나. 제자들에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고…".다쳐서 병원에 실려간 직원도 있었다. 나머지 직원들과 함께 물벼락을 맞은 제품을 건져냈다. 제자도 스승도 말이 없었다. 점심부터 굶었지만 청소를 마친 새벽까지 자리를 뜬 사람은 없었다. 퇴근한 직원들은 한사람도 지각하지 않고 출근했다. 건조실은 보험금을 받아 다시 지었다. 화재 여파로 납기보다 한 달 늦었지만 국산 탈질촉매를 분당화력발전소에 2002년 12월 처음 공급할 수 있었다.
이때 신 사장은 확신했다. '화재 중 제품을 꺼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불로 뛰어든 직원들,새벽까지 공장을 정리하고 아침에 전원 출근해 제품을 만드는 열정 등을 감안할 때 나노는 이제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신 사장은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를 나온 뒤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쓰쿠바에 있는 국립무기재질연구소에서 포스트닥(박사후)과정을 거쳤다. 그는 교내 실험실에서 창업한 뒤 2000년 11월 투자를 유치해 진주에 공장을 짓고 나노 입자의 이산화티탄 원료 생산 설비 가동에 들어갔다. 낮에는 강의하고 저녁엔 사장으로 변신해 땀을 흘렸다. 초창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했다. 공장을 완공했으나 수요가 없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질소산화물(NOx)에 대한 정부 규제가 당초 2003년에서 2005년으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력과 장비를 놀릴 수도 없었다. 생산한 원료를 사용해 최종 제품을 제조하는 장비와 공정을 개발했다. 2002년 말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의 과제를 따내 탈질촉매(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 선택적 촉매 환원)생산장비와 공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장비국산화를 시도했다. 하니컴 압출장비 개발은 기계제작 협력사가 참여한 가운데 밤낮 없이 힘을 쏟았으나 성공은 쉽지 않았다.
초창기엔 자금난도 극심했다. 투자자금에 월급과 외부 강연료까지 쏟아부어도 턱없이 부족했다. 창업 후 수년 동안 돈 구하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대표이사의 역할이 돈 구하러 다니는 것인 줄 알았으면 아예 창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신 사장은 껄껄 웃는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 나노는 세계적인 환경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발전소에서 필요로 하는 탈질촉매제품의 90% 이상을 납품한다. 이 제품은 화력발전소에서 태우는 화석원료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을 잡아낸다. 질소산화물은 산성비와 오존의 원인물질로 꼽히는 환경오염물질이다.
사각기둥 형태로 생긴 제품의 내부는 벌집처럼 생긴 수많은 구멍이 관통하고 있다. 오염된 공기가 이곳을 지나는 동안 암모니아가 질소산화물을 없애고 맑은 공기를 내보낸다.
이 회사의 강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뛰어난 기술력이다. 신 사장은 "탈질촉매는 세라믹을 원료로 만들지만 온도와 습도 등 외부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는 등 기술이 아주 까다로운 분야"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도 3~4개 업체만이 이를 생산할 정도다. 그나마 이들도 특정 업체의 원천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실제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것이다.
게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니컴형 세라믹 탈질촉매 제조에 관한 3가지 핵심기술(촉매원료와 성형공정 장비기술)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신 사장은 "해외업체들은 공정기술만 있고 원료와 장비는 외주업체에 의존하고 있으나 우리는 모든 기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탈질촉매 성형공정 및 압출성형 장비도 국산화했다.
둘째,글로벌 수출망이다. 나노는 초창기 독일과 프랑스 발전소에도 수출했다. 유럽 수출은 막스플랑크 연구원과 케임브리지대 출신이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이런 수출실적이 쌓이면서 국내 대부분의 발전소에도 납품하게 된 것이다. 신 사장은 "수입품은 우리가 국산화한 뒤 가격을 3분의 1로 떨어뜨려 국내발전소의 원가절감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셋째,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우수한 직원들이다. 4명으로 시작한 나노의 직원은 100명으로 늘었다. 연구 · 개발 인력만 20명에 달한다. 이런 인력을 토대로 지금까지 특허 등 13건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했다. 이 회사 사훈은 '종업원을 행복하게 해주자'다. "기업에선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신 사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업원 가운데 석사나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에 대해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이미 5명이 회사 장학금으로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3명이 재학 중이다.
신 사장은 "명색이 국립대이지만 지방대는 취업이 힘들 뿐 아니라 몇몇 대기업은 아예 원서조차 받아주질 않는다"며 "나노를 대기업보다 우수한 국내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의 종업원들이 몸을 던져 일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신 사장은 고향인 경북 상주에 최근 5만㎡ 규모의 2공장을 완공했다. 상주 공장 규모는 진주 공장의 7.5배에 이른다. 그는 "나노의 매출은 2007년 45억원에서 2008년 71억원,2009년 161억원에 달했고 올해 목표는 28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세계적으로 오염물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선박,자동차 분야 등에서 새로운 수요처가 생기는 등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며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적극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이뤄지고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도 대폭 확대됐다. 게다가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산업은행도 지원에 나서 든든한 원군을 만난 상태다.
신 사장은 거대 시장인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연내 상하이에 '나노차이나'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그는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우리 제품의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2015년까지는 생산량,매출 등 모든 면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