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는 사실 이색직업이 아닙니다.”
정미순 갈리마드퍼퓸조향스쿨 원장(43)은 조향사가 서양에선 중세 때부터 존재해왔던 오랜 직업군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문직으로 인정받은 건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정 원장은 “향에 대한 비즈니스는 거의 후진국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향을 만드는 일, 즉 조향은 종합 지식을 요구합니다. 화학물질을 조합해 결국 사람들 감성을 자극하는 일인 만큼 신경과학, 물리학, 생명공학, 인지공학과도 연계되죠. 하지만 우리나라엔 조향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답니다. 선진국에선 향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일찍부터 인식, 이미 시장을 200억달러까지 키워놨죠.”
우리나라에서 조향사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현재 화장품 회사나 향수 회사 향 관련 팀에서 일하는 인력이다.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가 우연히 조향 파트를 맡게 된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전문성이 부족하기에 발전에 한계가 있다. 정 원장은 “자격을 갖춘 조향사는 업계 전반으로 봐도 100여명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이들 중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조향사다. 고3 시절 세계적인 화장품 사업가인 에스티로더의 삶을 담은 전기를 읽고 짜릿한 전율을 느낀 게 오늘날까지 온 원동력이다.
“에스티로더는 원래 조향사 출신이에요. 꿈 많던 청소년 시절 저도 한국의 에스티로더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대학 전공도 향 제조의 기본이 되는 화학으로 정했어요.”
문제는 그 이후였다. 조향을 가르치는 곳이 한국엔 전혀 없었기에 국외에서 공부할 곳을 찾아야 했다. 수소문 끝에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미야프래그런스스쿨을 거쳐 프랑스 향수 회사인 갈리마드에서도 심층적인 조향 교육을 받았다. 특별한 조향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그는 이후 대구한의대에서 보건학을 전공하는 등 자기개발을 계속해 나갔다. 지난해부턴 서울대 대학원 바이오엔지니어링 박사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단순히 향 종류만 많이 안다고 훌륭한 조향사가 될 순 없습니다. 그건 기본이죠. 기억해 놓은 수백 가지의 향을 기본으로 자유자재로 배합해 특별한 작품을 내놔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람이 냄새를 어떤 식으로 인지하고 평가하는지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그래서 계속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 원장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조향 사업과 교육 사업이다. 그는 맞춤형 향수업계에 있어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패션 브랜드나 캐릭터 향수, 공연을 위한 향수 등 종류별로 다양한 상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형태로 납품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주력할 부분은 교육이다.
“국내 모 대학과 산학협동 과정을 논의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화학과 관련한 기본 교육을 2년 정도 받고 나머지 2년을 제 학원에서 실습하는 방식이죠. 조금씩 국내 조향 산업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쁩니다.”
출처: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