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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잇는 家嶪] 행남자기-1

김상엽 강사(김쌤) 2008. 7. 25. 22:52

(6) 행남자기 ‥"일본에 뺏긴 밥그릇 두고볼수가 없더라구…"

1980년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유럽 최대 도자기 유통회사인 융거한스사 사장이 도자기 샘플을 챙겨 일어서려던 30대 한국 청년의 소맷자락을 황급히 낚아챘다.

제품 자랑을 한 귀로 흘려 듣던 사장이 청년을 돌려 세운 것은 10여 장의 접시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깨져 나간 '사건'이 벌어진 직후였다.

제풀에 지쳐 꽁무니를 뺄 줄 알았던 한국 청년이 사무실에 진열된 유럽산 그릇을 자신의 가방에서 꺼낸 10개의 접시와 하나씩 맞부딪친 것.결과는 10전10패.유럽산이 무릎을 꿇었다.

의외의 결과에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격을 물어 왔다.

로열덜튼 로열코펜하겐 등 400년 전통의 세계적 도자기 회사들이 즐비한 도자기 본고장 유럽의 빗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배짱 한번 두둑했던 그 남자가 바로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67)이다.

김 회장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회고했다.

때리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품질을 못 믿기에 쇼를 좀 했지.연습을 해 갔으니 망정이지 각도만 조금 달랐어도… 허허."

그로부터 28년.행남자기는 한 해 2000만개의 도자기를 생산,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하는 국내 1위의 도자기 회사로 성장했다.

1942년 고(故) 김창훈 창업회장이 첫발을 내디딘 행남자기는 김준형 명예회장(94)에서 김용주 회장으로,이제 김 회장의 장남인 김유석 상무(37)로 4대째 이어지며 도자기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우리 식기는 우리 손으로'

올해로 66주년을 맞는 행남자기의 모태는 1942년 5월 김창훈 창업회장이 전남 목포에 설립한 행남사.일제의 징발로 사라진 놋쇠 그릇의 빈 자리를 일본산 도기가 차지하는 것을 보고 '우리 기술을 배워 간 일본에 질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창업주는 1941년 당시 27세였던 아들 김준형 명예회장을 일본 최고 도자기 기술 보유기관인 아리타 도자기 시험장에 보내 기술을 배워 오도록 했다.

여기에 한국 전통 도자기 기술을 접목할 경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도자기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명예회장은 "선친께서는 공원 노숙을 밥 먹듯하면서 힘겹게 기술을 익혔다"고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전했다.

국내 첫 도자기 제조회사였던 행남사에는 '최초'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1953년 국내 최초 양식기 개발,1957년 국내 최초 본차이나 자체기술 생산,1963년 국내 최초 도자기 해외 수출(홍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선 "국산 도자기 산업사와 행남자기 연혁이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장학 사업,불우이웃 돕기 등 기업 이익 환원에 관심을 쏟다 보니 지역 주민들의 시선도 관대하고 애정 어린 것이었다.

목포 공장에 불이 났을 때다.

주민들이 밤새도록 불을 끈 후 남은 양동이가 무려 1200개.당시 목포 인구가 10만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가정이 불 끄기에 동참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금 다발 손에 쥔 점주,공장 앞에 줄 서

김 명예회장은 1957년 원료 배합 기술과 소성(燒成) 기술을 결합시켜 순수 국내산 본차이나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행남자기의 기술 수준은 이미 네덜란드 영국 일본 등에 근접해 있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김 명예회장이 기틀을 닦은 기술력은 1985년 국내 처음으로 베네수엘라에 도자기 공장 플랜트를 수출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3대 김용주 회장은 마케팅과 디자인 시대로 행남을 이끌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인터내셔널 비즈니스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오일 쇼크가 한창이던 1974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전공을 살려 수출 물꼬를 트는 데 주력했다.

돌파구를 찾은 것이 '스톤웨어'.미국인들의 식습관을 연구해 두껍고 튼튼하게 만든 식기류가 입소문을 탔다.

스톤웨어는 9개월 만에 100만달러어치나 팔려 나갔다.

김 회장은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한 파격적 디자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브랜드를 고급화하고 기술 혁신에 힘썼다.

가마에 산소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검푸른 빛깔의 '산화 자기'를 유백색으로 만든 아이보리 차이나와 색감을 고급화한 스노우 본차이나 등 프리미엄급 도자기 그릇류를 잇따라 선보여 1970~80년대 내수시장을 석권했다.

이때가 최고 전성기였다.

정호정 상무(여주공장장)는 "공장 앞에 현금 다발을 손에 든 총판 점주들이 줄을 섰기 때문에 영업사원이 필요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청와대 및 예멘 대통령궁 식기도 공급

행남자기는 지난해 '세계 톱3 브랜드 진입'을 새 비전으로 선포하고 브랜드 고급화를 선언했다.

이를 주도하는 곳이 김 상무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국내마케팅본부.중국산 저가 제품과 고가 해외 명품 도자기의 범람으로 매출과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시장 상황을 고급화 전략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인정받는 저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을 브랜드화했다.

'Designers' Collection'이 바로 그것.김 회장의 디자인 경영을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2006년 5월 출시된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인 아릭 레비가 디자인한 제품과 사진작가 김중만씨의 작품을 담은 제품은 현재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회사는 특히 청와대 전용 식기,남북정상회담 식기,노벨상 공식만찬 식기,예멘 대통령궁 식기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제품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이월 상품과 신상품이 뒤섞인 어지러운 유통 시장을 개선,직영유통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혁신을 통해 지난해 498억원이던 매출을 올해는 600억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김 상무는 "글로벌 시장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무엇보다 유통시장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차별화된 고급 브랜드 개발로 2010년까지 세계 3대 도자기 회사로 우뚝 서겠다"고 말했다.

출처: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