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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지키기 50년 외고집 '오복식품'

김상엽 강사(김쌤) 2010. 10. 11. 10:02

채경석 오복식품 대표(오른쪽)가 아들 채용관 상무에게 간장의 품질에 대해 설명 해주고 있다. 두 사람은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장 맛보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부산=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채경석 오복식품 대표(62)는 매일 부산 감천동 소재 본사 연구실로 출근한다. 그의 사무실이 연구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장맛을 지키기 위해 연구실 안에 사무실을 뒀다는 게 채 대표의 설명이다.

채 대표의 하루는 출근과 동시에 제품의 맛을 감별하는 일로 시작한다. 매일 30여분간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오복식품이 생산하는 20여개 제품을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고 10여초씩 머금는다. 이를 통해 숙성이 제대로 됐는지,미생물 발효 상태는 정상인지,오염원이 들어갔는지 찾아낸다.

채 대표는 "36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는 걸요. 맛만 보면 어느 공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죠.장은 맛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오복식품은 6 · 25 전쟁 중이던 1952년 당시 해병대 초대 인사참모(소령)였던 고(故) 채동우 회장(1918~1997년)이 군생활을 접고 부산 보수동에 창업했다. 초창기 고추장 군납으로 시작한 사업은 1958년 '오복' 브랜드로 간장을 출시하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채 대표는 "당시 일반인들이 다른 간장공장을 찾아가 오복간장을 찾았을 정도로 오복간장은 부산지역에서 간장의 대명사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대기업의 진출로 판매량이 매년 감소해 간장시장을 거의 잃다시피했다. 회사가 위기를 맞자 채 회장은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채 대표를 1974년 불러들였다. 채 대표는 "첫 출근하는 날 대리점주들이 찾아와 '매출이 줄어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으니 마진을 높여주고 무자료 거래를 용인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채 대표는 '힘들더라도 장맛과 정도를 지키자'며 대리점주들을 설득했다. 채 대표의 '정도경영'은 1979년 부산지역 장류업체들이 불량제품을 만들다 무더기로 구속돼 문을 닫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 사건 이후 부산지역 장류업체가 줄줄이 도산했다. 오복은 1980년대 중반까지 부산과 경남 · 북 간장시장을 평정하게 된다.

그런데 1985년 일부 언론에 화학간장(산분해 방식) 문제가 보도되면서 양조간장(자연분해 방식)을 만들라는 소비자 단체의 요구가 거세져 장류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국내 장류업계는 숙성 기간이 짧고,설비투자 비용이 적은 화학간장을 주로 만들었다. 채 대표는 "양조간장 설비를 제작하는 일본 업체를 찾아가 구입을 요청했다 단박에 거절당했다"고 털어놨다.

직접 개발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일본 공장을 방문했을때 봤던 기억을 되살려 설계도를 그렸다.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직원들과 밤샘하기 일쑤였다. 매출(당시 70억원 수준)의 40%가 넘는 30억원을 투자해 6개월 만인 1987년 초 제국기(메주 띄우는 설비), 증자기(콩 불리는 설비), 발효탱크, 압착기 등 양조간장 설비 일체를 국산화했다. 이렇게 해서 그해 국내 첫 양조간장을 내놨다. 채 대표는 "양조간장이 출시되자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매일 연장근무를 해도 주문 물량을 댈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복식품은 1994년 또 한번의 위기를 맞는다. 간장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돼 보호장벽이 허물어진 것.삼호물산 신송식품 등 대기업이 간장시장에 뛰어들어 가격할인 등 출혈경쟁을 하는 통에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이때 채 대표는 팀장에게 어음발행 결제 인사 채용 등 전권을 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팀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채 대표는 "팀경영을 도입해 3년쯤 지나자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며 "당시는 국내에 팀경영이 서적을 통해 막 소개되던 때인데 우리 회사가 가장 먼저 적용해 전문가들도 배우고 갈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또 1996년엔 간장업계의 골칫거리였던 발암 · 불임 물질로 의심되던 MCPD(식물성 가수분해 단백질)를 제거하는 기술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장류업계에 무료로 제공했다.

부산 · 경남지역 간장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1990년대 하반기부터 전국으로 시장을 넓혀나갔다. 경쟁사 제품보다 20~30% 비싼데도 잘 팔렸다. 이렇게 되자 채 대표는 1998년 100억원을 들여 김해시 진영읍에 양조원액 공장을 지었다. 2002년엔 점유율 20%대로 전국 간장시장에서 샘표식품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05년엔 학교급식 시장 1위를 꿰찼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아들 채용관 상무(37)가 2001년 입사해 힘을 보태고 있다. 매일 아침 채 대표와 함께 감평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영업과 개발에 매진 중이다. 채 상무는 "처음엔 무슨 맛인지 알지 못했지만 10년간 매일 하다보니 이제 장맛을 알 것 같다"며 "특히 3년간 중식당 요리사들의 협조를 받아 2008년 내놓은 자장면용 춘장은 짧은 기간에 학교급식 시장에서 1위가 됐다"고 소개했다. 오복식품의 춘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부산지역 중화요리협회는 최근 오복 춘장을 공식 춘장으로 지정했다.

이 회사는 1995년부터 해외 시장도 공략,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연간 100만달러 상당의 간장을 수출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290억원)보다 소폭 증가한 300억원이다. 채 대표는 "최고 품질의 장류를 만들어 100년 이상 가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출처: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