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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보/알짜 강소기업

절삭공구의 국산화의 자존심 '한국OSG'

김상엽 강사(김쌤) 2010. 10. 11. 09:59

정태일 한국OSG 회장(왼쪽)은 아들 정승진 사장을 "참신한 경영감각을 갖췄다"고 평가했고,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로부터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정 회장 부자가 나사제조용 다이스를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1957년.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 네살 소년은 진학 대신 취업을 택했다.

먹고 살기 위해 들어간 곳은 조그만 공구회사.해외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각양각색의 공구를 접하면서 소년은 직접 공구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키웠다. 정밀 공구를 만들기 위해선 수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주경야독'으로 중 ·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까지 마쳤다.

 그로부터 19년 뒤 소년은 어느덧 서른 세살 청년으로 성장했다. 1976년 몸 담았던 회사가 대기업에 흡수되자 청년은 직접 공구 회사를 차렸다. 30년이 지난 올해 청년이 세운 회사는 국내 절삭공구 업계에서 첫 손 꼽히는 기업으로 커졌다.

정태일 한국OSG 회장(68)의 이야기다. 한국OSG는 정 회장이 일본OSG와 합작해 세운 절삭공구 분야의 국내 최대 기업이다.

◆공구 국산화의 꿈

한국OSG는 일본 공구를 들여와 국내에 판매하는 OSG정밀공구상사로 출발했다. "직장을 그만둘 무렵 일본OSG에서 한국 에이전트를 맡아보라는 제안이 왔어요. 다니던 회사에서 무역 담당부장을 맡았던 데다 영어 · 일어를 구사하니 적임자라 생각했나 봅니다. "

일본OSG 공구를 수입 판매해 얻는 수익은 제법 짭짤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구 국산화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갔다. 1980년 정 회장은 수입 · 판매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제조까지 하자는 결심을 굳히고 회사 이름을 수일정밀로 바꿨다. "660㎡ 남짓한 공장에 기계 2대,종업원 2명을 데리고 시작했죠.그런데 기술력이 달렸어요. 어쩔 수 없이 일본OSG에 부탁해 기술을 전수받았죠."

당시 일본OSG에선 한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데 거부감이 컸다. 그때 정 회장을 도와준 사람이 일본OSG 창업자인 고(故) 오사와 히데오 회장.오사와 회장은 평소 "한국에 내 아들이 한명 있다"고 할 정도로 정 회장을 아꼈다. 어렵사리 기술을 확보한 정 회장은 불과 5개월 만에 나사제조용 둥근 다이스 국산화에 성공했다. 첫 국산화 성공으로 사업은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983년 나사제조용 평다이스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등 잇딴 성과를 거뒀다. 정 회장의 사업능력을 높이 산 일본OSG는 1985년 합작법인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1991년엔 공구의 '본가'라 할 수 있는 일본시장에 엔드밀을 수출하는 성과도 올렸다.

◆일본에 기술을 역수출하다

회사를 세운 지 34년,한국OSG의 고객사는 수천개로 늘어났다. 정 회장은 "자동차에서 휴대전화,항공기 등에까지 우리 제품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고속성장의 배경에는 정 회장이 강조하는 '품질 경영'이 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밀함을 갖춰야 하는 공구의 특성상 품질이 뒤처져선 어디에서도 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한국OSG의 기술력은 일본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다. 3년 전 일본OSG의 2세 경영자인 오사와 테루히데 회장은 핵심간부 18명을 한국OSG에 보내 어떻게 단시간에 최고의 기술력과 실적을 올렸나 살펴보게 했다.

올 초에도 일본OSG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애플의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중국 전자업체에서 휴대폰 금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엔드밀 공급자로 일본OSG를 제치고 한국OSG를 선택한 것.정 회장은 "일본OSG가 자존심을 버리고 우리한테 엔드밀 도면 좀 보여달라고 요청해왔다"고 소개했다.

◆2세 경영으로 이어지는 꿈

회사가 안정된 기반에 올라선 2001년,아들 정승진 사장(38)이 한국OSG에 입사했다. 평소 "(가업을) 잇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얘기했던 정 회장은 2003년 정 사장이 일본OSG 연수를 마칠 무렵 가업승계를 결심했다.

정 회장은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2세가) 능력이 안되면 맡겨서는 안된다"며 "그러나 능력이 된다면 전문경영인보다는 아무래도 무한책임을 갖는 자식이 잇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의 합류 이후 한국OSG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금형산업의 필요부품인 엔드밀 시장의 40%,나사절삭공구인 탭(TAPS) 시장의 65%,나사전조 다이스 시장의 55%를 차지할 정도다. 실적도 좋다. 2007년 매출 642억원,당기순이익 90억원이었던 실적은 정 사장이 경영을 맡은 2008년 매출 732억원,당기순이익 1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로 잠시 주춤했으나 올해는 매출 700억원 이상,당기순이익 100억원 이상을 올릴 전망이다.

정 사장은 "아버지가 닦아놓은 탄탄한 사업기반이 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며 "애플이 아이폰으로 휴대폰 업계 판도를 바꿔놨듯이 공구업계에서도 언제 뛰어난 후발주자가 나타나 판을 바꿀 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경영계획에 대해선 "한국OSG의 해외 매출비중은 10%에 불과한데 이제는 중국 · 동남아 등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며 "일본의 기술력,중국의 코스트 경쟁력을 갖춘 한국 최고의 절삭공구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출처: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