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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에서 송전탑 플랜트 수출까지 '보성파워텍'

김상엽 강사(김쌤) 2010. 10. 11. 09:55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오른쪽)과 임재황 대표가 안산공장에서 과부하 발생시 전기공급을 자동으로 차단해 주는 컷아웃스위치의 품질을 살피면서 활짝 웃고 있다. /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

보성파워텍은 2003년 충북 충주시 7만5900㎡의 부지에 공장을 확장 신축했다. 지난해 말에도 현 공장 옆 5만9400㎡의 부지에 공장을 지어야 했다.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공장 생산 시설로는 국내외에서 들어오는 주문 물량을 제때 납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충주공장 직원들은 3년여 전부터 토 · 일요일에도 쉬지않고 오후 6시까지 특근을 할 정도다.

이 회사는 낙뢰방지용 지지대나 덮개류 등 배전제품에서부터 스위치 개폐기 등 중전기 제품,송전철탑과 발전소용 철골 등의 전력기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한다. 최근 들어 국내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는 물론 칠레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해외 발전소에 자재를 공급하면서 글로벌 전력기자재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초기에는 낮은 부가가치의 제품을 연 3000t 생산하는 데 머물렀지만 현재는 전문기술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연 5만t 이상 생산하는 규모로 커졌다. 2008년 7월부터 임재황 대표가 2대 경영자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보성파워텍은 8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임도수 회장(72)이 1965년 입사한 한국전력을 퇴사하던 해인 1977년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건물에 삼창기업사를 설립하면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한전에서 배운 경험을 살려 지하에 매설하는 지중선을 판매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캐치홀더 전선퓨즈 등 전력기자재를 생산하던 보성물산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임 회장에게 경영참여를 제안해왔다. 아예 보성물산을 인수한 임 회장은 불량률이 높은 주물공정을 압출공정으로 바꾸고 제작단가가 비싼 사기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흑자경영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다.

1980년 서울 구로동에서 반월공단으로 본사와 공장을 옮긴 보성파워텍은 목동 과천 등 아파트촌 건설과 전선 지중화사업으로 성수기를 맞아 제2 공장을 신축하며 사세를 키웠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지로 수출시장도 개척했다.

하지만 84년 4월 경영위기를 맞는다. 한전 다닐 때부터 '의리의 돌쇠'로 불리던 임 회장이 어음까지 발행해 도운 지인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5억3000만원을 대신 갚아야 할 입장에 처한 것이다.

임 회장은 "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가 날 수밖에 없어 덜컥 겁이 났다"며 "어음소지자와 은행을 매일 찾아가고 친구들한테 빌리고 집도 담보 잡혀가며 자금을 마련, 겨우겨우 해결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전력도 계약만 체결한 상황에서 미리 대금을 결제해줘 임 회장을 도왔다.

이후 지중선 절연자재 전문업체인 미국 레이켐과의 기술제휴로 24㎸ 케이블용 절연자재인 절연커버를 개발한 데 이어 일본 긴포전기와의 기술제휴로 신형 전선퓨즈를 개발해 한국전력에 86년부터 공급했다. 90년대 들어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뒤 24.8㎸ 가스절연부하 개폐기와 낙뢰표시기,가스차단기 등을 잇따라 개발하면서 국내 전력기자재 분야의 발전을 선도해 나갔다. 내수와 수출물량이 늘어나면서 안산에 제3공장을 지었고 94년에는 코스닥에 등록(상장)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들어 한전의 발주량 감소와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또한번 경영압박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해 보성파워텍은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반도체 소재(다층세라믹패키지)사업을 비롯 절도범의 도주로를 막는 시스템 사업 등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100억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거래업체 40여곳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생긴 미수금도 35억원에 이르는 등 자금난으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임 회장은 "한 은행 지점장이 옷을 벗을 각오로 지원해주지 않았으면 98년 5월 도산했을 것"이라며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구조조정 등 기업혁신활동을 통해 1년 만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우물만 파겠다는 결단을 내려 지금의 보성파워텍을 만들게 됐다"고 덧 붙였다.

2000년대 들어 경기가 회복되면서 한국전력이 투자를 확대하고 건설업체들의 대형건물 신축이 늘면서 매출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직원에 대한 복리후생을 원상복귀하고 인력도 추가 채용했다. 필리핀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지로 수출선을 확대하는 등 해외시장을 넓혔다. 자동화 설비를 갖춘 충주공장도 세웠다.

임 회장은 회사가 안정되자 한국전력에 다니는 아들을 불러들여 2000년 7월부터 경영수업을 받게 했다. 임 회장은 "결국 아들이 책임지고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한 뒤 한전에 취업해 전기 분야 일을 배우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2008년 7월 사령탑에 오른 아들은 신제품 개발과 혁신활동,해외시장 개척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며 "올해는 해외시장 확대를 통해 지난해 700억원보다 40% 이상 증가한 1000억원대의 매출 달성이 목표"라고 밝혔다.

임 회장은 전기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5년 전기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그 해 한국산업기술대로부터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1989년부터 95년까지 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96년부터 2008년까지는 안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회원사의 권익옹호에도 앞장서 왔다. 특히 안산상의 회장 취임 당시 5억원의 재정적자 상태였던 상의 재정을 퇴임 때 50억원 흑자재정으로 전환시켰다. 출처: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