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교육전문가 김상엽의 티스토리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대기업 인사팀, 대학교 취업팀 근무, 취업특강 15년차 경력 전문성 보유★★★

◆기업정보/알짜 강소기업

동물의약품 연구개발에 집중 '유니바이오테크'

김상엽 강사(김쌤) 2010. 10. 11. 09:51

조재희 대표가 동물의약품의 일종인 면역증강제를 검안하고 있다. 조대표는 선친인 고 조성용 회장의 R&D(연구개발) 집중 투자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조재희 유니바이오테크 대표(36)의 집안은 동물의약품 업계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다. 국내 간판 동물의약품 업체인 대성미생물연구소의 창업자 이원직 전 회장이 조 대표의 외조부다.

지금은 외삼촌인 이동규 회장과 이모부인 조항원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맡고 있다. 이원직 전 회장의 동생은 이오직 전 동물약품협회 회장으로 역시 아들인 이원규 사장이 동물의약품 제조업체인 한동의 대표를 맡고 있다. 또 조 대표의 이모부인 조훈영 회장은 동물의약품 업체인 진우약품을 경영하고 있다.

조 대표의 말처럼 "가업을 물려받아 동물의약품 업계에 몸담게 된 것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생각을 못했다. 부친인 고 조성용 전 회장이 2007년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불과 33세에 대표직을 맡았을 때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막막했다"고 조 대표는 회상했다. 회사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터라 그 자리를 선뜻 맡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조 대표가 어려움을 딛고 어엿한 경영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업계 경쟁자이자 멘토 역할을 해준 동물의약품 업계의 친인척들,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준 50여명의 임직원들,그리고 부친인 조 전 회장이 다져놓은 발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2일 서울 서초동 유니바이오테크에서 만난 조 대표는 여느 중소기업 경영자들처럼 바쁜 모습이었다. 직원들이 모두 캐주얼 차림이었지만 젊은 사장은 회사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좁은 사무실에서 이집트 수출 계약서와 씨름하고 있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해외시장 공략이 올해 연초부터 속속 성과를 내면서 조 대표의 업무는 더욱 빡빡해졌다. 하지만 주춤하던 매출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고 회사도 안정감을 빠르게 되찾으면서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유니바이오테크는 1974년 유니화학상사로 출발했다. 해외에서 동물의약품 원료인 염화코린을 사들여 국내에서 합성한 뒤 사료공장에 판매하는 사업으로 시작했다. 조 전 회장은 이 회사에 지분을 투자했다가 1984년 인수해 대표에 취임했다. 미국 스미스클라인AHP,올텍,일본 덴카제약 등과 잇단 공급계약을 체결해 의약품 원료를 국내에 들여와 제품을 생산했다.

조 전 회장이 대표로 취임한 후 회사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연 15억원 남짓이던 매출은 1990년대 후반 160억원까지 증가했다. 특히 농협에 사료첨가제인 비타민 미네랄 프리믹스를 납품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동물의약품 부문 비중을 크게 늘려 백신을 제외한 사료첨가제,주사제 등 230개 품목의 허가를 획득했다.

조 전 회장은 특히 R&D(연구개발)에 유난히 신경을 기울였다. 다국적 기업들과 기술제휴에 적극 나섰고 신규 의약품 특허 출연에도 집중했다. 학술적 관심이 높아 1980년부터 18년간 월간종합축산의 발행인을 맡기도 했다. 주식시장에서 바이오 붐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 증권사들이 기업공개(IPO)를 하자고 달려든 적이 있다. 당시 동물의약품,바이오라는 간판을 단 업체들은 간판값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였다. 하지만 다른 주주들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조 전 회장은 회사의 기술적 기반이 아직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기초가 우선돼야 한다는 조 전 회장의 경영이념은 2세 경영수업에도 반영됐다. 조 대표는 2005년 입사하자마자 충남 예산의 생산라인에 투입됐다. 사료첨가제를 배합하고 포장하고 제품 포대를 나르는 최말단부터 시작했다. 6개월간 생산 공정에서 일했던 조 대표에게 그 다음 맡겨진 업무는 영업.이 역시 전라북도와 제주도 등 가장 먼 지역을 맡아야 했다.

회사 전반의 업무를 현장에서 갈고 닦던 조 대표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조 전 회장이 갑자기 작고하면서부터다. 조 대표는 "도매상들의 경영난이 겹치면서 유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당시 대형 유통사 4~5개가 한꺼번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올라 수익성도 악화됐다. 원료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점적으로 원료를 공급하던 다국적제약사들은 직접 한국에 생산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특히 유니바이오테크는 네덜란드 업체인 DSM으로부터 원료를 사다가 농협에 납품했지만 DSM이 직접 공급키로 하면서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1990년대 말 160억원에 달하던 매출은 1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조 대표는 "결국 해외 원료에 의존하기보다는 원천기술을 통해 만든 제품으로 승부해야 했다"며 "그동안 선친이 기술 개발 쪽 비중을 늘려놓지 않았으면 잇따른 외부 악재에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업망도 바꿨다. 유니바이오테크는 농협이나 사료업체 등에 집중됐던 매출을 줄이고 직접 대리점에 동물약품을 공급하는 이른바 '필드' 부문 매출을 늘려나갔다. 이 때문에 농협 등과의 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도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업부문도 양어(어류 양식)나 애완견 부문으로 다변화했다. 특히 고부가가치 시장인 애완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내놓고 충남동물센터와 애견용 비타민제도 개발했다. 지난해 매출은 120억원.아직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다소 왜소하지만 상당한 회복세를 보인 셈이다.

조 대표는 "올해는 수출부문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기대된다"며 "2010년이 유니바이오테크가 새롭게 시작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