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플래너는 백조다. 물 위로 드러난 모습은 우아하지만 끊임없이 발을 저어야 떠있을 수 있다. 화려한 파티 뒤에는 새벽시장을 누비는 파티플래너의 발품이 있고, 치밀하게 준비된 기획서가 있다. 일상에서도 촉수를 곤두세워야 한다. 잠깐 한눈을 팔면 유행에 뒤처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파티를 즐기는 참석자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 피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파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글=김영훈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이달 1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송월동 주한 스위스 대사관저. 스위스 여행상품을 취급하는 국내 여행사 관계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토마스 쿠퍼 스위스 대사의 초대를 받고서다. 70여 명이 참석한 ‘스위스의 봄’ 파티는 서울 도심에 작은 스위스를 재현했다. 식탁 위에 스위스 치즈 퐁듀와 스위스 와인이 올랐고, 벽면엔 스위스 자연을 보여주는 영상이 흘렀다. 파티장 가운데엔 작은 등이 달린 나무를 배치해 자연의 느낌을 살렸다. 식탁 위 꽃 장식은 희거나 붉은 작은 꽃잎이 달린 시클라멘을 골랐다. 알프스의 대표적 꽃인 에델바이스를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워 가장 비슷한 느낌이 나는 꽃을 고른 것이다.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스위스의 느낌을 즐겼지만,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준비됐다. 파티를 기획·연출한 파티플래너 이소해 마리에라붐 대표는 “대사관저에서 열리는 파티인 만큼 스위스의 특색을 살리면서, 집에 초대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점도 많다. 화려한 파티 뒤에 가려진 과정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다. 파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선 새벽 꽃시장에 다녀야 하고, 자기계발을 게을리하면 ‘감이 떨어졌다’는 핀잔과 함께 일감이 뚝 끊어질 수 있다.
팔방미인이어야=파티플래너는 파티의 기획·섭외·진행·연출을 맡는 멀티플레이어다. 단순히 인테리어나 꽃 장식, 음식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다. 색깔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 스위스 대사관저 파티의 경우 스위스의 상징 색인 흰색과 붉은색을 주로 사용했다. 식탁보는 붉은색, 의자 덮개는 흰색을 쓰는 식이다. 공간 디자인만이 아니다.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이 파티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입구에서 참석자 등록을 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단계마다 플래너의 배려가 숨어 있다.
준비 과정은 더 치밀하다. 보통 파티 일정이 정해지면 파티플래너들은 계획서를 제출한다. 처음부터 특정 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있고, 경쟁입찰을 벌이기도 한다. 1세대 파티플래너인 이경목 파티즌 대표는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글로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문서 작성 능력과 발표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파티 주최 측과 계획에 대한 협의가 끝나면 노동이 시작된다. 적합한 꽃을 찾아 새벽 꽃시장을 누비기도 하고, 포목점을 뒤지기도 한다. 파티 성격에 따라 풍선 장식 전문가나 꽃 장식을 담당할 플로리스트를 섭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공연을 하는 디너쇼 형식의 파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공연에 대한 안목까지 갖춰야 한다. 이소해 대표는 “힘겨운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만족감”이라고 말했다.
파티는 언제나 진행형=파티는 늘 변한다. 최신 유행을 따라가야 하고, 때로는 스스로 스타일을 창조해야 한다. 이소해 대표는 철마다 백화점이나 주요 브랜드 매장을 돌며 바뀐 디스플레이와 유행을 꼼꼼히 점검한다. 관련 전시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서 간다. 잡지나 패션쇼에 대한 관심은 기본이다. 이 때문에 당장 몇 개월 강의를 듣고서 유능한 파티플래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대표는 “적어도 3~4년은 현장에서 궂은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제대로 된 기획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공간 디자인, 와인과 음식, 오락 등 파티를 구성하는 각 요소를 조화시키는 매니저 역할이 중요하다. 파티플래너가 되기 전에 기업에서 홍보나 마케팅을 담당한 경험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파티플래너 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파티플래너에게 가장 필요한 인성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도전 정신’이 꼽혔다.
자료협조 : 인크루트 www.incruit.com
파티플래너 되려면
13~15주 과정 교육
공식자격증은 없어
파티플래너가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면서 교육기관도 여럿 생겼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파티플래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교육기관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종합적인 파티 기획 능력에 대한 강의는 거의 없고, 꽃·테이블 장식 등 단편적인 기술만 가르치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 강사 경력도 눈여겨 봐야 한다. 교육기관이 늘어나면서, 현장 경험은 별로 없고 강의만 주력하는 강사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선 수료할 때 자격증을 주기도 하는데, 국내에선 공식적인 파티플래너 자격증은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기본 교육을 받은 후에는 파티 업체에 취직하거나 인턴을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활동 중인 파티플래너 중 일부는 꽃 장식을 전문으로 하는 플로리스트나 인테리어 전문가로 활동하다 파티 기획자로 범위를 넓힌 경우도 있다. 이경목 파티즌 대표는 “요즘 파티플래너 지망생들은 너무 조급하다”며 “길게 보고 일반 회사에서 마케팅이나 홍보 업무에 대한 경험을 쌓으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파티플래너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창업도 가능하다. 아예 어린이 파티나 소규모 동호인 파티를 중심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들도 있다.
어떤 경우를 선택하든 현장에서 고생할 각오는 해야 한다. 파티플래너들은 “이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쌓은 경험이 나중에 더 큰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또 너무 기술적인 부분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 파티에 직접 참여해 즐기면서 파티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출처:중앙일보,인크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