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마이크를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섰다. 왜냐고? 자신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 갈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란다. 음향기기 전문 중견 중소기업인 가락전자의 장병화 회장(62)이 그 주인공이다. 요즘 장 회장은 30년간 운영한 회사를 넘겨받을 ‘누군가’를 찾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몇달 전에는 후계자를 물색하는 내용의 TV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다. “중소기업처럼 탄력성이 적은 경우엔 장수의 선택 자체가 전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가 차세대 경영인 발굴에 온 정성을 쏟는 이유다.
이쯤되면 가족들로서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 대단히 서운할 법하다. 사실 장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독립군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에 찌든 어린시절을 보냈고 어렵게 회사를 세우고 일궈왔다. 자신이 힘들었던 만큼 자녀들에겐 원 없이 해줄 만도 한데 “아이들에겐 어렸을 때부터 알아서 갈 길을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주변에서 서운하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런 핀잔 정도는 이겨내야 경영을 하죠”라고 단호히 말했다.
후계자를 찾는 일 이외에 장 회장은 민족문제연구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진실을 알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마침 인터뷰가 이뤄진 지난 1일은 그가 회사를 만들고 이끌어온 지 31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면 가장 쉽겠지만, 기업이라는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이 우수한 인재가 머물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선 도덕성은 기본으로 갖추고 글로벌 경영을 할 수 있는 제2세대 경영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신문을 보고 자신에게 연락하는 예비 CEO 후보자들을 누구든 환영한다며 문을 활짝 열어뒀다. “자신있는 분들은 언제든 오십시오. 제가 면접해 드리겠습니다.”
CEO를 구합니다!
-견실한 중소기업 회장님이 후계자를 찾겠다고 직접 마이크를 들고 공중파를 탄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요. 왜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습니까.
“중소기업 가업승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고 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가업승계와 관련한 TF팀에 제가 멤버로 있어요. 그래서 방송국 쪽에서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왔고 저는 우리 회사의 문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자 출연했어요.”
-문제라고 한다면 마음에 드는 후계자 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인가요?
“중소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장수(將帥)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기업에는 탄탄한 조직이 있고 그런 인재들이 꽤 많은 것 같지만 중소기업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인재 풀이 없어요. 대기업의 경우엔 1년 정도 경영을 맡겨서 실적이 좋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택 자체가 결과예요.”
-왜 유독 중소기업이 그렇습니까.
“경영자를 잘못 바꾸게 되면 문을 닫거나 경영에 큰 어려움이 생겨요. 아까 장수하고 비교했지만, 조직이 작고 결정이 결과와 직결되는 중소기업의 경우엔 장수가 전쟁의 승패까지 가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CEO의 손에 회사의 흥망성쇠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면 더더욱 혈연을 나눈 아들이 믿음직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찾아나선 이유는 뭡니까?
“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업 경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 능력이 있다면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우리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자식에게 넘겨서 잘되는 기업의 비율이 많지 않아요. 물론 자식에게 물려주는 방법이 가장 쉽지요. 가업도 이을 수 있고요. 그러나 성공하기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유능한 장수가 있다면 아들이든, 외부에서 영입하든, 내부 장기근속자든 기업에 유리한지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것이 장수(長壽) 기업을 만드는 것이고 그 장수 기업은 결국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해방된 이후에 산업화가 이뤄져서 우리 세대가 산업을 일군 세대이고 처음으로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세대입니다. 우리 세대에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100년 가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어요. 선진국을 보세요. 장수 기업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는 조흥은행 정도가 100년 기업이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이 서운해할 것 같습니다.
“워낙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희들 갈 길을 알아서 가라’고 교육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셋인데 첫째는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는 수의사고 셋째는 대기업에 다녀요. 하고 싶은 길을 찾아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하고 싶은 일이 경영이라면 언제든지 경영 공부를 해서 능력을 키우고 가능성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집사람은 조금 서운하게 생각하죠. 큰아들이 우리 회사에 와서 제일 말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말단에서 일하는 큰아들에 대해서도 주변에서 공격이 있죠. 친척들이 ‘왜 말단에서 고생시키냐’고 하고. 그런데 그런 말들에 흔들리면 경영을 못합니다. 이길 수 있어야 경영을 하죠. 아들로서도 차근차근 말단부터 확실하게 알아야 앞으로 더 올라가서도 일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우 자녀들이 가업 승계를 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습니다.
“네. 그런데 부를 대물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것이 아니라 책임의 대물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땅이나 재산, 주식 이런 것을 자식에게 주는 것은 그냥 불로소득이고 부의 대물림입니다. 그렇지만 기업 문제는 경영권의 문제입니다. 우리 중소기업이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서 오해들이 많지만 지금은 서서히 분리되는 단계이고 다음 세대에선 자본과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능력이 없다면 경영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봐서 제가 직접 후계자를 물색하는 인터뷰까지 하게 된 것이지요.”
인재가 머무는 기업을 위해선 도덕성이 기본
-언제까지 후계자를 계속 찾을 생각입니까.
장병화 회장은 “잔뿌리와 풀뿌리가 건실하지 못하면 고목은 오래 지탱될 수 없다”면서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고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중소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과감하게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세구선임기자 |
-마음에 드는 분이 없나 보죠?
“최고 경영자가 O, X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더군요. △도 있고 더 두고 봐야할 것들도 있고요. 가능성이 60%까지 이른 분이 있는데 제 기준으로 80~90% 정도까지 되어야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는 외부 경영자 쪽에 마음을 두고 있고요.”
“아들 말단사원,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중기는 인재풀 없어 흥망성쇄 CEO 손에…도덕성은 물론 포괄적으로 세상 꿰뚫어야
-선택이 늦어지는 것을 보니 사람을 보는 눈이 너무 까다로운 것 같습니다.
“까다로운 것이 아니고요, 기업을 누구나 성공시킬 수 없어요. 저는 정말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게다가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거든요. 기업의 역할은 내부 직원은 물론 외부 고객들이 함께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더불어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장수가 돼서 저의 1세대 경영에 이어 2세대 경영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1세기의 CEO 덕목이라는 것은 미래 비전을 가지고 시장을 잘 볼 수 있고 그것을 사내로 끌고와 직원들과 함께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그만 물건이라도 떨어지면 올려놓는 식으로 꼼꼼하게 개입하는 경영을 했다면 이제 포괄적으로 세상을 꿰뚫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CEO가 되어야 합니다. 도덕성도 갖춰야 하고요.”
-도덕성보다 경영능력이나 성과를 중심으로 CEO의 능력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가 봤을 때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은 절대 성공을 못해요. 최근 몇몇 기업에서 주식 등을 자식들에게 넘기는 것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됐잖아요? 그런 것들은 도덕불감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은 기업도 많이 있어요. 기업은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안에 무수한 인재가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최고 책임자가 도덕성을 갖추지 않은 인물이라면 사람들이 머물지 않아요. 특히 중소기업은 더 그렇습니다.”
-경영인이 갖춰야 할 덕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피해야 할 덕목이 있다면요.
“기업인은 정치활동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인의 전문성과 정치인의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기업인은 기업을 열심히 해야죠. 제가 아는 기업인들 중에 정치에 손 대서 잘 된 적이 없어요. 다 망가졌죠.”
-그런데 본인은 지난 총선에 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본인의 철학과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요.
“정치를 하고자 간 것이 아닙니다. 정치를 하는 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공천혁명을 이뤄보자고 해서 갔어요. 주변에서도 많은 분들이 ‘너 그러다가 국회의원 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저는 그런 생각 추호도 없이 갔어요. 외부 공심위원이 7명이었는데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정치인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부터 다 수집했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 이루지 못하고 조금은 이룬 것 같아요. 워낙 정치라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더군요. 기업인이 정치를 도와주는 역할은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일선에 나서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맨손으로 세운 기업, 젊은 세대들도 중소기업에 관심 가져줬으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압니다. 지금도 꾸준히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그는 독립운동가 장이호 선생의 아들이다. 장이호 선생은 191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 19세에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군 활동을 했으며 77년 대한민국건국훈장이 추서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친일인명사전 편찬하는 일을 했고요. 광복군 유족회,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단 1원도 받지 않았고, 출신학교가 좋은 것도, 친척들의 덕을 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운이 좋은 경우이고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비참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가운데 호적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어 삶이 너무 힘든 분들이 많아요. 가슴 아프게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과연 국가를 위해서 몸을 던질까요? 국가를 위해 몸 던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이렇게 비참한데 누가 나서겠습니까. 그분들이 못사는 이유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고 합니다. 부모들이 독립운동한다고 가족들을 버리고 나갔어요. 그러니 돈이나 아무런 바탕이 없어요. 그렇게 세상에 내몰리면 어떻게 먹고 살겠어요.”
-친일인명사전의 경우 반대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전의 발표가 늦어지는 것도 이의신청을 받았고 보충자료를 찾고 법률적으로 보완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왜곡되어서는 안되고 진실만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왜 과거를 들추느냐, 미래를 위해서 좋은 게 아니다’라고 하시지만 미래로 가기 위해선 과거를 꼭 알고 가야 합니다. 과거의 진실을 알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민족 반역자를 국법으로 엄단했고 새로운 질서를 세웠죠. 과거가 과거에 머물지 많고 미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민족사의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30년 동안 사업을 일군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외가가 있는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죠. 그렇지만 서울에 대해서 항상 끌렸어요. 마음에 항상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죠. 그래서 역전 담을 넘어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탔어요. 차표도 없이요. 열차 안에서 차장이 지나갈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졌는데 차표 검사가 있을 때마다 객차와 객차 사이 연결통로 밖으로 매달려 차장을 피했어요. 만약 열차가 굴 속으로라도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희망을 꿈꾸었죠. 서울에 도착했지만 형편없었죠.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이곳저곳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개월 뒤에 청계천 장사동에 전축을 만드는 상점인 성일사 기술부에 들어갔어요. 선배들 심부름을 했고 눈이라도 오면 골목까지 눈을 치웠어요. 그렇게 책임자의 신임을 얻었고 저녁마다 종로 YMCA 부근에 있던 한국라디오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장안에서 전자분야 제일 가는 기술자로 소문났던 분 밑에서 일하게 됐고 밤새는 줄 모르고 일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축음기로 음악을 들어서 관심은 있었죠. 77년에 을지로 4가에 처음으로 제 이름을 걸고 공장을 내게 됐어요. 그 해에 아버님이 훈장을 받았는데 아버님의 과거에 대한 사실을 알면서 독립군의 후예라는 것이 자신감을 주더군요.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일본 마쓰시다 기술을 카피했고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도 생산했어요. 이종환, 박원웅 등 DJ들이나 통기타 가수들이 다 제 믹서를 썼어요. 그리고 현재까지 음향기기 한 품목만으로 30년간 제조업을 하고 있죠. 음향 기술도 지금은 발전해서 초음파로 수심을 측정하거나 태아 사진을 찍고, 로봇이나 보안기계의 음성인식 기능으로까지 확장됐습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시는데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그동안 우리나라가 경제를 빨리 성장시키려고 하다보니까 중화학공업이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폈지요. 이제는 좀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중소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바뀌는 속도가 느리지 않나 싶어요. 얼마 전에도 2008년까지 이노비즈 기업을 1만개 육성한다고 하고, 또 잘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중소기업의 현장에서는 좀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육성해서 대기업과 공존하고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도록 하지 않으면 절대 선진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중소기업들도 튼실하게 운영되고 있고 부족하다면 자금력입니다. 담보가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죠. 대기업은 정책자금도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것도 아주 미미하고요.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더불어 살 수 있게끔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큰 고목 밑에는 잔뿌리가 있고 그 뿌리들 아래는 풀뿌리가 있어요. 풀뿌리가 건실해야 고목이 오래 지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예요. 풀뿌리를 우습게 보면 그 고목이 살 것 같습니까? 보이는 것만, 고목만, 땅 위의 것만 보지 말고 그 밑에 있는 풀뿌리들도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중소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우리 회사에 들어왔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조금만 서툴면, 잘 안 되면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버려요. 조금 참고 이겨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다른 직장을 구해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러고나서 직장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반면 우리 회사는 여전히 사람을 구하는 중입니다. 사람들이 없어요. 물론 대기업에 다니는 것이 보기에 좋겠죠. 그렇지만 97%가 중소기업이고 자동차를 하나 만들어도 중소기업들의 부품 없이는 안 됩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중소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과감하게 도전하십시오.”
인터뷰가 끝나고 장 회장은 회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줬다. 눈길을 잡아끈 것은 장구를 배울 수 있도록 꾸며진 강당. 장 회장은 “음향기기 회사를 운영하려면 음악과 항상 친숙해야 하기 때문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우리 회사 CEO는 뽑을 때는 몰라도 일단 되고 나면 악기 하나는 배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도 대부분 바이올린, 기타 등 악기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왜 하필 장구를 배우느냐”고 묻자 장 회장은 재치 있게 대답하며 크게 웃었다. “우리 회사가 가락전자잖아요. 우리 ‘가락’을 배워야죠. 우리 가락만큼 우리 중소기업도 잘되어야 하고요.”
장병화는 누구인가? 출처: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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