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박 하면 가나자와"
'가나자와 시 오와리(尾張) 정 2-16-80 가타니산업'이라고 적힌 종이를 내밀자 50대로 보이는 택시 운전사는 "혹시 금박회사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청하지도 않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금박에 관한 한 가나자와 직인(職人)들의 솜씨가 일본 최고입니다. 10엔짜리 동전 크기의 금을 다다미 1장 크기로 고르게 펴낼 수 있는 게 가나자와 금박 직인들이죠. 금박 두께는 1만분의 1mm입니다. 콧김에도 날아갈 정도로 얇기 때문에 옛날에는 부채나 선풍기도 없는 '찜통'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했죠."
그의 설명이 일단락될 즈음 "택시 운전을 하기 전에 금박 관련 일을 했느냐"고 물어봤다. "가나자와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지식"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택시가 멈춘 곳은 가나자와 역에서 멀지 않은 시내 주택가의 이층집이었다.
'가타니산업'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로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잠시 후 응접실에서 얼굴을 마주한 가타니 하치로(蚊谷八郞) 사장은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 사무실(모두 6층짜리 현대식 건물)을 방문했던 고객들은 (여기에 와 보고) 대부분 깜작 놀라지만 이곳이 가타니산업의 본사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 날씨의 선물
과거 금박은 수백 장의 종이 사이에 금을 끼워 놓고 쇠망치로 종이 표면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망치질을 견뎌낼 수 있는 강한 종이가 필수였다.
가타니 사장은 "여름에는 고온다습하면서 겨울에는 눈이 많고 추운 가나자와의 날씨가 이런 종이를 만들어내는 데 천혜의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우호적인 것과 기업의 생존은 별개"라고 그는 덧붙였다.
가나자와 금박의 역사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금박제조업체는 가타니산업을 포함해 2곳 정도에 불과하다.
상당수 기업은 전쟁이나 불황의 태풍에 휩쓸려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업했다.
가타니 사장은 "우리 회사도 시대 환경에 맞춰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타니산업은 1899년 창업 이후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신을 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 변신은 정부가 금·은지금(金·銀地金)을 강력히 통제 관리하던 1940년대 후반의 일. 당시 경영을 맡고 있던 가타니 사장의 아버지는 다른 금박제조업체에 앞서 기계화를 단행했다.
또 금박뿐 아니라 알루미늄박과 동박, 금은사(金銀絲) 등으로 사업 분야를 급속히 확대했다. 가내수공업체에서 중소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가타니산업은 곧 위기를 맞았다.
1950년대 후반 '냄비바닥 불경기'라는 극심한 불황이 일본 경제를 덮치면서 금박 수요도 급격히 감소했다.
○ "끊임없이 변신하되 뿌리는 소중히"
가타니산업은 전사박(轉寫箔)에서 살길을 찾았다. 전사박이란 폴리에스테르필름 등에 금속박을 얇게 입힌 것.
가타니산업은 진공에 가까운 상태에서 금속을 기화(氣化)시켜 폴리에스테르필름 등에 막을 입히는 증착(蒸着)법을 개발해 전사박을 대량생산했다.
이를 계기로 가타니산업은 전통공예품 소재업체에서 산업용 자재업체로 도약했다. 제품의 표면이나 포장을 아름답게 하려는 수요가 있는 기업은 모두 가타니산업의 잠재고객이었다.
가타니산업이 지금까지 개척한 고객기업에는 소니, 마쓰시타전기, 샤프, 도요타 등 일본의 초일류기업과 한국의 전자업체, 프랑스의 화장품업체 등이 있다.
전사박 사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금박이 현재 가타니산업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타니 사장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 회사의 뿌리는 금박 제조다. 가나자와 본사를 고집하는 것도 이곳에 우리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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