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조사업체는 어떤 기업이 망할지, 안 망할지를 가려내는 프로다. 과연 이들 기업은 스스로 살아남는 데도 프로일까.
일본의 신용조사업체 1호는 1892년 오사카(大阪)에 설립된 상업흥신소다. 이 회사는 4년 뒤 도쿄(東京)에 문을 연 도쿄흥신소와 함께 산업화 초기 일본의 신용조사업계를 양분하다시피 했다.
일본은행과 대형 은행들이 출자한 반관(半官) 업체인 이 두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합병된 이후에도 한동안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패전 후 일본은행과 대형 은행들의 보호막이 사라지자 합병회사는 점점 쇠퇴의 길을 걷다 결국 문을 닫았다.
생존 비결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비근한 사례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회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 최대의 신용조사업체로 108년 역사를 자랑하는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그렇다.
○ "부끄러운 역사도 소중한 교훈"
일본 방위성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도쿄 신주쿠(新宿) 구 혼시오(本鹽) 정 데이코쿠데이터뱅크 사료관.
신용조사업의 발전과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108년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가 가득한 이곳에서 1950년대 노사분쟁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코너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자랑 위주로 꾸미기 마련인 기업의 기념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어두운 소재였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1953년부터 7년여에 걸쳐 과격한 노사분규를 겪으면서 존망의 위기를 겪었다. 1956년에는 약 1개월간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
다카쓰 다카시(高津隆) 사료관장은 "우리 회사의 100년사에서 가장 감추고 싶은 부분이지만 미래의 발전을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 비중을 둬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좋은 역사든 나쁜 역사든 소중히 간직하려는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자세는 1000여 쪽에 이르는 '데이코쿠데이터뱅크 100년사'에도 나타난다. 고토 다케오(後藤武夫) 창업주가 창업 직후 경찰에 두 차례나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사실조차 빠짐없이 기술하고 있다.
다카쓰 관장은 "비록 2건 모두 무혐의로 판정이 났지만 오해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창업자의 부끄러운 개인사까지도 감추려 하지 않는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창업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토 창업주가 강조했던 '탈속(脫俗)' 정신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경영모토로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탈속이란 세속을 벗어난다는 뜻이지만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서는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뛰어난 회사, 유례가 없는 혁신적인 서비스라는 의미다.
○ "두 번째로 접하는 정보는 가치 없어"
1950년대 노사분규의 후유증으로 빈사 상태에서 헤매고 있던 이 회사를 살린 것도 '탈속=혁신'이었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1967년 일본 신용조사업계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도입했다. 당시는 전자계산기의 연산 결과를 주판으로 확인한 뒤에야 믿을 정도로 전자기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던 시절.
사내에서도 반발이 있었지만 경영진은 1970년 컴퓨터를 대형화하고 이듬해에는 재무분석 업무를 종이작업에서 전산작업으로 바꾸었다.
또 이 회사가 축적해둔 신용조사 자료를 전산화해 1972년 2월 기업 재무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인 '코스모스1'사업을 업계 최초로 시작했다.
이후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정보화 분야에서 항상 다른 업체들보다 한발 앞서 달렸다.
일례로 일본 국토교통성이 2001년 9월 공공사업 전자입찰시스템을 처음 도입했을 때는 전자인증서 발행업무를 이 회사에 독점시켰다. 당시 이를 기술적으로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회사가 데이코쿠데이터뱅크 한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남보다 한발 앞선 경영은 월등히 앞선 실적을 낳았다.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1년간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463억 엔의 매출에 41억 엔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에 비해 업계 2위인 도쿄상업리서치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63억 엔과 4억 엔에 불과했다. 당기순이익에서 약 10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다카쓰 관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보는 처음으로 가진 곳이 절대적인 강자다. 두 번째로 접하는 정보는 정보로서 가치가 없다. 따라서 정보산업에는 오직 1등만 있을 뿐 2등은 없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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