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교육전문가 김상엽의 티스토리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대기업 인사팀, 대학교 취업팀 근무, 취업특강 15년차 경력 전문성 보유★★★

◆현장스케치/일본여행

일본 100년 기업을 가다-공연예술업체 쇼치쿠

김상엽 강사(김쌤) 2008. 12. 12. 10:51

일본인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통극 가부키를 매회 공연 티켓이 매진되는 흥행 비즈니스로 키워낸 쇼치쿠. 가부키의 현대화에 노력해 온 사코모토 준이치 사장은 이제 “가부키는 전통유산이 아니라 현대극”이라고 단언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가부키 세계화’ 흥행시킨 주연

1960년 뉴욕공연서 붐 일으켜 로 역수입

젊은층 저변 확대… 영화산업 발전에도 큰 몫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의 무형문화재는 세 가지가 있다. 가무()극인 노가쿠()와 가부키(), 인형극인 닌교조루리분라쿠()다. 이 중 노가쿠와 가부키는 형식과 내용 모두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공연 비즈니스로서 두 전통극의 위상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가쿠는 정부의 지원 등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부키는 광범위한 계층에서 열성 팬을 확보해 흥행 비즈니스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가부키 배우 중에는 영화배우 이상으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는 스타도 적지 않다.》

○ 가부키 붐은 100% 쇼치쿠 작품

지난달 25일 오후 4시 반 도쿄() 긴자()에 있는 가부키 공연 전용극장 가부키자.

평일인 데다 퇴근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반 이상 남아있는데도 1866석에 이르는 객석은 만원이었다.

관객 중에는 영어 해설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낀 서양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뿐 아니라 4월 공연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회 공연 티켓이 매진됐다는 것이 극장 측의 설명이었다.

1년간 가부키자에서 가부키를 관람하는 팬은 약 100만 명. 교토()의 미나미자와 오사카()의 쇼치쿠자 등 다른 전용극장을 포함하면 일본의 가부키 팬은 연인원 기준으로 3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어()투성이 대사 때문에 일본인조차 해설이 없으면 알아듣기 어렵다는 가부키가 400년이 넘도록 대중 공연예술로서 생명력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통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이 남다르거나 일본 정부의 문화정책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쇼치쿠()라는 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쇼치쿠는 가부키자 미나미자 쇼치쿠자 등 일본의 대형 가부키 공연 전용극장을 모두 소유하고 제작시장도 거의 독점하고 있다.

○ 해외서 역()수입된 가부키 인기

쇼치쿠의 역사는 1895년 오타니 다케지로() 창업주가 교토의 한 가부키 공연 전용극장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극장 신축과 인수 등을 통해 가부키 공연 사업을 급속히 확장시킨 오타니 창업주는 1920년에는 영화사업에도 발을 내디뎠다.

제2차 세계대전과 패전, 영화산업의 부상 등으로 가부키산업은 1940, 50년대 극심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쇼치쿠는 1960년 미국 뉴욕에서 공연을 하는 등 가부키 인기를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뉴욕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뜻밖의 부수효과까지 가져다주었다.

일본 기업과 거래를 하는 미국의 비즈니스맨들은 일본 기업가를 만났을 때 가부키를 단골 화제에 올렸다.

오카자키 데쓰야() 쇼치쿠 연극제작부 부장은 “당시 가부키를 모르면 뉴욕에서 비즈니스 런치(business lunch)가 안 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 사업 상대의 가부키 관련 질문에 쩔쩔 맨 기업인들이 귀국 후 너도나도 가부키극장을 찾으면서 일본 국내에서도 가부키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 “가부키는 유산이 아니다”




쇼치쿠는 뉴욕 공연 성공으로 생겨난 기회를 가만히 앉아서 흘려보내지 않았다.

영어로 시작한 이어폰 해설을 일본어로 확대해 가부키를 난해하게 여기던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또한 사코모토 준이치() 사장이 “가부키는 유산이 아니라 현대극”이라고 단언할 만큼 가부키 현대화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영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위해 가부키 공연을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해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가부키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현대화’와 더불어 쇼치쿠가 가부키 붐의 핵심 비결로 꼽는 것이 철저한 배우 관리다. 영화든 가부키든 대중을 열광시키려면 ‘스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쇼치쿠의 흥행 철학이다.

오카자키 부장은 “가부키의 주요 배역은 25개 가문이 대대로 물려내려 간다”면서 “후계자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경조사를 모두 챙기면서 10년 뒤, 20년 뒤의 흥행까지 치밀하게 기획한다”고 설명했다.

 

 쇼치쿠는 일본의 영화산업 발전에도 기념비적인 업적을 많이 남겼다.

경영면에서는 가부키가 어려울 때 영화가, 영화가 힘들 때는 가부키가 회사의 수익을 떠받치는 상생()구조를 만들어 왔다.  출처: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