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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일본여행

일본 100년 기업을 가다-교복 제조업체 톰보 학생복

김상엽 강사(김쌤) 2008. 12. 12. 10:49


톰보 학생복 다마노 공장에서 숙련공이 교복 치마를 재단하고 있다. 학생복 제작은 아직도 상당 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오카야마=서영아 특파원
《인구 60만 명의 일본 오카야마() 현은 ‘학생복 왕국’으로 불린다. 전국 학생들이 입는 교복의 7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 지역은 토지에 염분이 많아 곡물 작황이 좋지 않지만 대신 면화 재배가 번성해 섬유산업이 발전했다. 규슈() 시코쿠() 등 인근 지역에서 몰려드는 노동력도 예나 지금이나 풍부하다. 처음에 다비(·일본식 버선)와 하카마(·일본식 하의) 등을 만들던 업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학생복 업자로 변신했다. 현재 이곳에서 교복을 만드는 50여 회사 가운데 상위 3개사가 곧 ‘전국 톱 3’다. 창업 132년째를 맞는 ‘톰보(Tombow) 학생복’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업체 중 하나. 톰보는 ‘잠자리’를 뜻하는 일본어 돈보(청령)에서 따온 것. 지난달 23일 찾은 오카야마 현 다마노() 시의 공장은 270여 명의 직원이 재봉틀을 돌리는 소리로 부산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교복 제작은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재단까지는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해 자동화했지만 그 이후 공정은 재봉틀을 활용한 수작업, 마무리는 손바느질로 한다. 이런 방식으로 매년 전국 3200개 학교의 교복 700만 벌을 생산한다.》

한 땀 한 땀 수작업… ‘장인의 숨결’ 올올이

▽“기업은 사회를 위해 있는 것”=톰보 학생복의 132년 역사는 지역과 더불어 생존을 모색해 온 기간으로 통한다.

1876년 미야케 구마고로(·1860∼1908)가 자택에서 다비를 만든 ‘미야케 상점’이 회사의 출발점이었다. 당시에는 원단에 풀을 발라 다듬잇돌에 놓고 망치로 굴곡을 만든 뒤 손바느질로 하루 3켤레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도 공장 앞뜰에는 창업자가 사용했다는 다듬잇돌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1930년 교복산업에 뛰어들었다. 학생들에게 친근감이 있는 잠자리를 로고로 채용해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모든 원료가 군 당국의 통제 아래 들어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찌꺼기 면화를 주워 모아 실을 뽑아내거나 종이로 교복을 만들기도 했다. 공장 전체가 군복을 만드는 데 동원된 시절도 있었다.

톰보의 사사()는 회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2대 미야케 야스마사() 사장을 꼽는다. 회사를 주식회사로 만들고 기계 생산을 시작한 사람도, 홍보의 개념을 적극 도입한 이도 야스마사였다.

“기업은 사원 고용을 지속함으로써 지역에 공헌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1956년 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사재를 털어 고교생을 위한 장학기금 핫쇼카이()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오카야마 현 출신 고교생 600여 명이 이 기금의 혜택을 받고 사회에 나왔다.

1986년부터는 ‘잠자리사랑 회화 콩쿠르’를 매년 개최해 청소년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8200개교에서 15만 점을 응모해 ‘일본 최대의 그림 경연’으로 자리 잡았다.




▽개발력이 생존의 열쇠=최근 일본 학생복 업계는 저출산과 인건비 상승으로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대부분의 의류 생산 공장이 인건비가 싼 해외로 옮겨갔지만 오카야마의 학생복 업체들은 제자리를 지켰다. “소규모 주문에 수공업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한편으로 이는 일본의 학생복이 ‘비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쓰러지는 기업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톰보는 신규 시장 진출에서 7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비결이 뭘까.

오토시 가즈노리() 사장은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한 상품의 개발력이 그 비결”이라며 “세상 흐름을 한발 앞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톰보사는 ‘개발형 사풍()’으로 유명하다. 1952년 합성섬유 학생복 개발에 성공해 1960년대에 전국 굴지의 메이커로 성장했다. 당시 합성섬유로의 전환에 늦었던 수많은 교복업체들은 폐업으로 내몰렸다.

1980년대에는 학교별 교복을 내놓았다. 당시 전국에 700여 개교가 새로 생기자 교복을 학교의 상징으로 만든다는 이미지 전략을 세우고 학교마다 독자적인 교복 디자인을 제안한 것. 고급화 전략도 병행해 1989년에는 저명 디자이너 야마모토 간사이() 씨와 손을 잡고 ‘디자이너 교복 브랜드’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요즘은 새로 세워지는 ‘초중일관교(같은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학교)’나 통폐합을 앞둔 학교들을 노려 판촉작전을 펼치고 있다.

개발본부 홍보과의 가와카미 겐지() 참사는 “이 같은 톰보 개발력의 원천은 사원들의 참여”라고 설명했다.

 

톰보사는 1997년부터 간부 육성 강좌인 ‘주니어보드’를 운영하는 등 독특한 인재 육성책도 구사하고 있다. 주니어보드는 각 부문에서 30, 40대 7, 8명을 선발해 2년간 조직개혁이나 신규사업 진출 방안 등을 경영진과 논의케 한다. 10여 년이 흐른 현재 임원의 절반 이상을 이 강좌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오카야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톰보(Tombow) 학생복 개요  
구분 내용
창업 연도 1876년
연간 매출액 188억4300만 엔(2007년 6월 결산)
부문별
매출액
학생복 143억600만 엔
스포츠의류 28억 엔
간병인의류 10억8200만 엔
비즈니스웨어 6억5500만 엔
종업원 780명
본사 소재지 오카야마 시 고세이 정 2-2-9
홈페이지 www.tombow.gr.jp

 

출처: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