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는 지름 3m가량의 통이 10개 안팎, 2층에는 지름이 1m 남짓한 통이 10개 안팎 놓여 있는 정도였다. 담금장 안의 나무 기둥이나 들보는 온통 닳고 파인 자국투성이로 150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처럼 겉보기는 낡고 허름하지만 사우라는 일본 청주 애호가치고 모르는 이가 없는 명주(名酒) 제조업체다. 특히 이 회사가 1973년 발매한 '우라카스미젠(浦霞禪)'은 1970년대 중반 '지방 청주 붐'을 이끌었던 명주 가운데 하나로 해외에도 알려져 있다.
○ 명공(名工)이 명주를 만든다
1800개가 넘을 정도로 청주 제조업체가 많은 일본에서는 업체 소재지 밖으로만 나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무명 브랜드가 태반이다.
그런데도 광고 한 줄 내보내지 않는 사우라가 일본 전국은 물론 해외에까지 이름을 알리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우라 고이치(佐浦弘一) 사우라 사장은 한마디로 "품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도쿄(東京)에서 한 민간단체 주최로 열린 제25회 전국주류콩쿠르의 결과는 사우라 사장의 말을 뒷받침한다.
대음양주, 순미대음양주, 본양조주 등 3개 부문의 왕좌를 가리는 이 대회의 대음양주 부문에서 사우라가 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 6명의 블라인드 테스트(브랜드를 가리고 하는 심사)에서 최고점을 얻었고 청주 애호가들의 인기투표에서는 130표 가운데 127표를 휩쓸었다.
사우라가 이처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술을 빚는 전 과정을 감독하고 책임지는 양조기술자, 즉 '도지(杜氏)'다.
청주 제조에는 '감'과 오랜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미묘한 공정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도지의 실력이 곧 청주의 맛이라고 사우라 사장은 설명했다.
1949년 입사해 1960년부터 도지로 일해 온 히라노 주이치(平野重一·79) 씨는 1989년 '현대의 명공(名工)'으로 노동상(相) 표창을 받은 데 이어 1993년에는 훈장까지 받은 실력파다.
그는 지난해 12월 명예 도지로 한발 물러앉았지만 지금도 틈틈이 현장에 들러 '술 만들기의 기본'을 지도하고 있다. "술을 만드는 기술자는 언제나 1년생"이라는 게 그의 지론.
○ 명공을 키운 품질지상주의와 순혈주의
사우라에서 그와 같은 명공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청주업계는 심한 기복을 겪었다. 패전 직후에는 원료인 쌀 자체가 귀했기 때문에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의 물결을 타면서 청주 수요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전성기인 1970년대 중반에는 청주 제조업체가 4000개를 넘어섰다. 일부 대형 업체는 공급 물량이 부족하자 다른 회사의 청주를 사다가 자기 회사의 청주와 섞어서 파는 '가이자케(買い酒)'를 일반화했다. 싸구려 청주도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환경에서도 사우라는 외형이나 이익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품질 개선에만 매달렸다. 다른 업체들이 호황을 구가하는 이 시기가 사우라에는 거꾸로 최대의 시련기였다.
하지만 청주 붐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처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청주 소비량이 반으로 줄어들면서 2200여 업체가 문을 닫았다.
반면 사우라는 매년 주문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1994년 인근 도시에 제2공장까지 지었을 정도였다. 이때도 사우라는 '가이자케'를 일절 하지 않는 보수적인 경영으로 일관했다.
효모도 기존 상품을 사다 쓰는 관행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배양해서 사용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품질지상주의와 순혈주의를 고집했기 때문에 명공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우라 사장은 "중소기업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절대로 대기업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면서 "품질을 높이는 것 외에는 어떤 경쟁에도 휘말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회사의 경영 방침"이라고 말했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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