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약 7000명인 후쿠야마 정에는 모두 8만 개의 항아리가 있다고 한다. 이 중 5만2000개를 보유한 사카모토(坂元)양조는 1805년 창업한 시니세(老鋪·전통 있는 유명 점포).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게 된 후쿠시마 구로즈를 전국에 알린 공훈자이기도 하다.
○ 똑같은 재료 넣어도 매번 다른 맛
구로즈는 200년간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온 제조법으로 빚어진다.
재료는 쌀과 누룩, 지하수뿐. 여기에 연평균 18.7도인 가고시마의 온화한 날씨와 햇볕, 항아리의 힘이 더해진다. 봄과 가을 연 2회 항아리에 재료를 넣으면 노천에 늘어선 항아리가 1년 이상 시간을 들여 부드러운 천연 현미식초를 빚어내는 것.
보통 쌀 식초가 만들어지려면 전분의 당화, 당의 알코올 발효, 알코올의 초산발효 과정이 필요하지만 구로즈는 이 세 가지 공정을 한 용기 안에서 이뤄낸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제조법이라고 한다.
구라모토 다다아키(藏元忠明·56) 공장장은 "햇볕만으로 발효를 시키니 똑같은 재료를 넣어도 매번 상태에 차이가 납니다. 30여 명의 장인이 매일같이 항아리 밭을 돌면서 뚜껑을 열어보고 발효 상태를 판단합니다. 마치 자식 키우기와 같지요"라고 말한다.
이 항아리 밭은 건강 붐과 함께 최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해외 관광객도 적지 않다.
○ 오래될수록 짙은 색깔 '항아리의 마법'
후쿠야마에서 식초 양조가 시작된 것은 약 200년 전. 예로부터 후쿠야마는 조정에 바치는 상납미의 집적지로 쌀이 흔했고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지하수 덕에 한때는 수십 개의 소규모 식초 양조소가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상황은 일변했다. 쌀 부족에 더해 합성식초의 등장으로 사카모토 양조 한 군데를 빼고 모두 폐업해 버린 것.
이런 후쿠시마 식초를 불사조처럼 부활시킨 인물이 사카모토 양조 5대째인 사카모토 아키오(坂元昭夫·77) 회장이다. 그 역시 부친에게서 "양조업은 내 대에서 접겠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규슈대 의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약국을 개업했지만 약국 한 모퉁이에 아버지가 집 뒤뜰에서 만든 현미식초를 진열하고 고객에게 권했다.
그런데 식초를 마신 손님들에게서 "오십견이 나았다" "지병이 좋아졌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의대 인맥을 활용해 식초의 분석을 의뢰했더니 혈액순환 개선이나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오래 담가둘수록 색이 검어지는 특성을 따서 이 식초를 '구로즈'라 이름 붙이고 생산을 확대했다. 구로즈의 효능이 알려져 몇 차례 매스컴에서 '마시는 식초의 건강효과'가 소개되자 주문은 날로 늘어만 갔다. 주변에서 식초 생산을 다시 시작하는 업자들도 생겼다.
그러나 발효의 신비는 과학의 힘으로 풀려고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기후조건이 다른 도쿄(東京)의 연구실로 보내 발효 과정을 재현해 보려 했지만 역시 되지 않았다. 결국 가고시마의 기후와 재료, 항아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결론밖에는 낼 수 없었다.
선인들의 지혜는 아직도 신비의 세계에 있다. "말 그대로 '복잡계'입니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구로즈에는 20종류 이상의 천연 아미노산이 들어 있고 이 같은 미생물의 다양한 작용이 효능을 안겨 준다'는 것 정도입니다."
○ 연구소 설립 등 근대화 모색
항아리 발효의 신비를 해명하는 것, 그리고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연구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사카모토 회장은 말한다. 동시에 회사의 근대화도 서둘고 있다.
6대째 바통을 이어받은 장남 아키히로(坂元昭宏·47) 사장은 미국에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유학파. 구로즈의 효능 분석과 제품관리를 위한 연구소도 설립했다. 최근 몇 년간은 구로즈의 효능을 분석하는 각 대학의 논문이 연간 몇 편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로즈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사카모토 양조의 항아리 5만2000개 중에는 200년 전부터 물려 내려온 사쓰마야키(薩摩燒) 1000여 개가 있다.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빚었다는 항아리다. 한국 삼천포 근방에서 사왔다는 항아리도 1만 개가량 있다.
사카모토 회장은 "20여 년 전에는 한국에 항아리를 사러 몇 번이나 갔는데, 지금은 좋은 옹기를 만드는 곳이 사라져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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