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오토바이-양궁-전자악기-반도체…
120년 생존비결? 한우물 아닌 한눈팔기
《“다각화는 장수(長壽) 기업의 무덤이다.” 수십,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니세(老鋪) 기업들이 본업 아닌 다른 사업에 한눈을 팔다가 몰락한 사례가 많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578년에 창업해 일본 최고(最古)의 기업으로 꼽혀 온 곤고구미(金剛組·절 건축업)가 지난해 사실상 파산한 원인도 무리한 다각화였다. 하지만 다각화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한 기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액 기준으로 세계 피아노시장의 30%, 전자피아노시장의 43%, 관악기시장의 33%를 차지하고 있는 야마하㈜가 대표적인 예다.》
“技앞에 불가능 없다” 계속 새 사업 도전
“품질-고객 제일주의 빼고 모두 바꾼다”
○ 기술자의 ‘곤조(根性·근성)’
악기 제조 과정을 견학하기 위해 연간 3만 명이 방문하는 시즈오카(靜岡) 현 하마마쓰(濱松) 시 야마하㈜의 방문객센터.
첨단 전자악기가 즐비하게 전시된 이곳에서 유독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낡은 오르간 1대. 야마하의 창업주 야마하 도라쿠스(山葉寅楠)가 만든 시제품 1호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의료기계 수리공이던 야마하 창업주와 악기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1887년. 구경만 하는 데도 허가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오르간이 귀하던 시절이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난생처음 오르간 수리를 부탁받은 야마하 창업주의 가슴속에는 도전정신이 꿈틀거렸다.
“이런 간단한 물건이 쌀 45말 값이라니….”
야마하는 2개월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오르간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눈대중으로 만든 오르간이 정확한 소리를 낼 리가 없었다.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야마하는 동업자와 둘이서 오르간을 떠메고 하코네(箱根)의 험령(險嶺)을 넘어 250km 떨어진 도쿄(東京)로 향했다.
도쿄예술대 음악부의 전신인 음악취조소에서 약 1개월 동안 전문가의 지도를 받은 야마하 창업주는 1888년 하마마쓰에 ‘야마하풍금제조소’ 간판을 내걸었다. 세계적인 악기 제조업체를 향한 첫발이었다.
○ ‘기술 강자’에게 불가능은 없다
야마하가 악기 이외의 분야로 본격적인 다각화를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직후. 본거지인 하마마쓰가 혼다와 스즈키 등 오토바이산업의 발상지라는 사실에 착안한 야마하는 1954년부터 오토바이 생산을 시작했다.
1955년 별도 회사로 독립한 야마하발동기는 현재 혼다에 이어 세계 2위의 오토바이업체로 성장했다.
야마하가 다각화에 성공한 제품은 오토바이뿐이 아니다.
1958년에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소재를 이용해 일본 최초로 양궁을 만들었다.
1973년 벨기에 양궁선수가 이 회사의 양궁을 사용해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야마하의 품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오르간에서 시작한 악기 및 음향산업은 현재 각종 어쿠스틱악기와 전자악기, 음향기기 등으로 확산됐다. 손을 대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악기 이외에 반도체, 골프채, 시스템키친, 자동차 내장용품, 합금 등 다양한 분야로 야마하는 진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영역 확장이 결코 무원칙한 것은 아니라는 게 우메무라 미쓰루 사장의 설명. 우메무라 사장은 “야마하는 피아노와 오토바이를 생산하면서 세계 일류의 첨단 소재(素材) 기술을 축적했다”면서 “이를 사장(死藏)하지 않고 활용한 것이 다각화”라고 말했다.
○ 다각화의 귀재도 지금은 ‘선택과 집중’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야마하는 다각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경쟁력이 없거나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 부문을 정리해 핵심 사업에 경영 자원을 쏟아 붓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1999년 하마마쓰 시에 있는 반도체공장을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리조트사업과 전자금속재료사업, 박막자기헤드사업 등을 과감하게 구조 조정했다.
올해 6월 새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우메무라 사장도 ‘더 사운드 컴퍼니(The Sound Company)’를 비전으로 내걸고 본업인 악기 및 음향 분야의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7일 오스트리아의 고급 피아노 회사인 베젠도르퍼를 매수하기로 합의한 것도 ‘선택과 집중’ 전략의 일환이다.
우메무라 사장은 “지난 120년의 역사 위에 추가로 120년의 역사를 쓰기 위해 품질제일주의와 고객제일주의를 빼놓고는 모든 것을 다 바꿀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시즈오카=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우메무라 미쓰루 사장 인터뷰▼
시대 맞춰 경영전략 변해야 이젠 선택과 집중에 무게 한국 악기시장 더 성장할 것
세계 최대의 악기 제조업체이면서 사업 다각화의 모범 사례로도 통하던 야마하가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다각화’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시즈오카 현 하마마쓰 시 야마하 본사에서 우메무라 미쓰루(梅村充·56·사진) 사장을 만나 그 배경과 한국의 악기 및 음향시장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다각화로 성공한 야마하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각화 전략과 선택과 집중 전략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에 따라 사업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경영 전략도 변해야 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규모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대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야마하만이 갖고 있는 강점을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악기회사는 대개 어쿠스틱 피아노, 전자 피아노, 바이올린 등 한 가지 악기만 제조한다. 야마하는 계속 종합 악기 메이커를 지향할 것인가.
“자동연주 피아노 등 기술이 융합된 제품이 많아지는 시대에 종합 악기 메이커는 그 나름의 강점이 있다. 음악대학이나 전문음악가들로부터 음악에 관한 모든 솔루션(해법)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회사라는 평판을 듣고 싶다.”
―한국 악기시장은 포화 상태가 아닌가. 2001년부터 한국시장에서의 마케팅을 강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교육열이 높고 음악을 즐기는 나라다. 소득 수준도 높다. 야마하로서는 성장 가능성이 많이 보이는 중요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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