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릴리

[중앙일보 심재우.김태성] 　지난해 입사한 한국릴리 새내기들이 회사의 주력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우현정, 김상태, 최수빈, 남상길, 서혜원, 김태현씨(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 [사진=김태성 기자]‘릴리(Lilly)’ 는 백합이란 뜻이다. 하지만 제약업계 사람들은 꽃보다 회사를 떠올릴 것이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 본사를 둔 131년 역사의 ‘일라이 릴리’ 말이다. 지난해 156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세계 9위의 제약사에 올랐다.

　일라이 릴리의 한국법인이 한국릴리다. 임직원 310명의 이 회사는 올 초 홍유석(42) 대표를 첫 한국인 사장으로 맞아 경사를 맞았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인종·성별·나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릴리의 기업 이념을 감안하면 하등 ‘사건’이라 할 만한 일이 못 됐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영국 지사의 인사 총책임자와 미국의 영업 총괄, 아시아·태평양 지역 환우회(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들의 모임) 정책총괄이 한국인이다. 능력만 있으면 미국인이 아니라도 글로벌 인재로 중용하는 전통이 뿌리 깊다.

　◆특장 살릴 때까지 기회를=한국릴리에서는 직원들이 자기계발 중장기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관리하도록 한다. 각자의 직무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그 수준이 미리 설정돼 있어 자신의 역량 수준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된다. 자기계발 계획에 따라 내부 또는 외부 교육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부서 간 이동도 비교적 원활한 편이다. 최대한 부서 이동 기회를 주려 한다. 홍 사장의 경우 릴리 본사 재무팀에 입사한 뒤 마케팅을 거쳐 영업소장을 맡는 등 다양한 과정을 겪었다.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본인의 장점과 능력을 살려 마케팅으로, 다시 영업소장으로 업무 기회를 넓혀 역량을 맘껏 발휘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한국릴리는 직원 개개인의 역량과 의사를 최대한 포용하는 인사 정책을 펼친다. 관리직을 원하면 ‘관리자 단계(Manager Ladder)’ 프로그램으로 경력을 쌓고, 전문가로 크고 싶으면 ‘전문가 단계(Specialist Ladder)’를 선택하면 된다.

　◆여성들의 천국=릴리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한국릴리는 전체 직원 3분의 1이 여성이다. 남성 직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영업직을 제외하면 여성 비율은 65%에 달한다. 승진에서도 ‘유리천장(여성 차별)’은 없다. 올해 대외협력부서 임원에 여성이 처음 발탁되는 등 중간관리자급 이상에서 여성의 비율은 40%에 달한다.

　한국릴리는 출퇴근 시간을 개인 사정에 맞추는 ‘탄력 시간제’를 운영한다. 8시간 근무조건에 맞춰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전 10시 출근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아침 7시 출근했다가 오후 4시에 퇴근해 자녀의 숙제를 돌봐 주는 직원도 있다.

　여직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홍보팀의 박선경 차장은 “다른 회사에서는 제도가 있어도 상사 눈치 보느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릴리에서는 여성 상사들이 솔선수범해 부하 직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한국릴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호칭 시스템이다. 동료를 부를 때 직책이 아니라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걸로 통일했다. 직급과 나이에 얽매이면 자칫 대등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할까 봐서다.

　◆올바른 윤리의식, 패기 있는 인재=한국릴리의 문을 두드리려면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통과 후 실무진 및 임원진 면접을 차례로 거친다. 채용 과정을 통해 도덕성과 투명성에 가치를 두고 지원자가 올바른 윤리의식을 가졌는지, 업무에 열정적이고 패기가 있는지를 면밀히 관찰한다. 입사 후 가장 먼저 회사 윤리가 적힌 레드북을 받고 그 내용을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한다. 김용배 인사담당 상무는 “생명을 구하는 제약회사는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글=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한국릴리는

■설립 연도: 1982년 대웅릴리

■1998년 한국릴리(일라이 릴리 100% 출자)

■2006년 실적: 매출 1162억원, 영업이익 140억원, 당기순이익 111억원

■대표: 홍유석 사장

■직원 수: 310명

■지점: 서울 본사, 대전·대구·부산·광주 영업소, 경기 안산 품질관리부

■주요 제품: 시알리스(발기부전 치료제), 자이프렉사(정신분열 치료제), 포스테오(골다공증 치료제), 알림타(폐암 치료제), 스트라테라(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제), 젬자(항암제), 액토스(당뇨병 치료제) 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