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러시아어)로 수출전문업체 취업

"러시아어 시장을 안방처럼 누비겠습니다."

입사한 지 10여일밖에 안 된 인천광역시의 기계 전문 수출업체인 유가엔터프라이즈㈜의 김형인(여·28)씨. 요즘 그는 출근길이 누구보다 신난다. 자신의 전공이었던 러시아어를 제대로 써먹으면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국산 방전가공기(放電加工機·전기 방전을 이용해 금속에 구멍을 뚫는 공구)를 수출하는 유가엔터프라이즈는 러시아를 올해의 중점 공략 시장으로 정했다. 러시아시장에만 지난해 회사 전체 수출 실적(220만달러)의 34%에 해당하는 75만달러를 수출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김씨는 회사가 러시아시장 공략을 위해 전략적으로 채용한 신병기인 셈이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했으나 최근까지 중학교의 기간제 영어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조선일보 와 기업은행 이 함께 운영하는 중소기업 전문 무료 취업 사이트인 '잡월드'( www.ibkcsjob.co.kr )에 구직 등록을 했다가 해외 마케팅을 맡길 인재를 찾던 이 회사 김만석 사장의 눈에 띄었다.



그는 요즘 학창 시절 느꼈던 '제2외국어로 먹고살기는 힘들다'는 생각은 '편견'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시야를 중소기업으로 조금 더 넓히니 내 역량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4년이나 러시아어를 배웠는데, 졸업 후에는 한번도 제대로 써먹지를 못했다"며 "요즘 러시아어로 전화도 하고, 이메일도 주고받다 보면 처음 (러시아어를) 배울 때처럼 새삼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요즘은 국내외 거래처와의 인맥 쌓기에 주력하는 한편 러시아 기업 2곳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러시아어 전공을 택한 이유는 러시아 에 대한 호기심과 발전 가능성 때문. 그는 "러시아는 유럽에서부터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까지 뻗친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부존자원을 바탕으로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어 전공자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영어나 중국어 같은 인기 외국어가 아닌 이른바 '비인기 외국어' 전공자는 기업들의 수요가 많지 않아 졸업 후 취업 길을 보장받기 어려웠다. 그는 "(취업을 위해서는) 전공(러시아어)만으로는 안 되고, 영어나 경제·경영처럼 인기 있는 부전공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 팽배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도 영어를 부전공으로 택했고, 안정된 영어교사를 목표로 3년 이상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기간제 영어교사로 지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김씨는 "학교는 너무 좁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며 "학교 밖의 다른 세상, 큰 세계를 무대로 살 수 있는 직업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결국 기업체 취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영어교사로 일할 때와 비교해 근무 여건이나 연봉 등 보상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씨는 "이 회사에서 20대 초·중반의 젊은 인재들이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학창 시절 외국인과 더 많이 접촉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비즈니스 실무를 겪어 보니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였습니다. '서로의 신뢰가 쌓여야 거래도 된다'는 것은 우리 사장님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김형인씨 취업 일지

·1999년 대학 입학(서울 A대학교 러시아어, 영어 부전공)

·2003년 2월 졸업

·2003~2008년 중등학교 기간제 영어교사

·2009년 2월 잡월드( www.ibkcsjob.co.kr ) 가입

·2009년 3월 유가엔터프라이즈㈜ 입사



김형인씨 취업 성공 비결

·장점: 러시아어와 영어 구사 능력(토익 940점대)

·단점: 졸업 후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기업 실무 경험 부족. 러시아어 실력도 뒷걸음질

장점 키우고, 단점 줄인 노력

·입사 후 무역 실무, 해외 마케팅 기법 등 현장 연수

·러시아어 공인시험(FLEX·TORFL 등) 다시 준비

새 직장의 장단점

·만족: 전공을 살려 세계를 무대로 일할 수 있게 된 점

·아쉬움: 초봉과 근무여건은 이전 직장(기간제 영어교사)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못함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