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어느 날. 화장품 제조전문기업 한국콜마 정관영 수석연구원은 제품분석기를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료용으로 사용되던 노화방지 성분 ‘이데베논’을 화장품에 응용하는 실험의 최종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데베논’은 뛰어난 효능에도 불구하고 자연상태에서 잘 변질되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잠시 후 분석기 계기판 숫자는 ‘이상 없음’ 결과를 내놓았다. 충남 연기 R&D(연구개발)센터에서 8명의 팀원이 꼬박 2년간 매달린 연구가 결실을 거둔 것.
이 기술은 지난 9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화장품과학자학회’에서 논문으로 발표됐고, 국내외 화장품업체들이 ‘이데베논 화장품’의 판매권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라붙었다. 자체 브랜드 하나 없는 중견 화장품 제조회사가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 새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콜마’의 기술력은 숫자로 증명된다. 올해 상반기 한국콜마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받은 기능성화장품 허가는 모두 149건. 쟁쟁한 브랜드 기업을 누르고 국내 업체 중 최고 실적이다. 이는 “브랜드 만능시대에 브랜드 대신 기술에 집중하겠다”는 창업주 윤동한(60) 회장의 흐름을 거꾸로 읽어내는 역(逆)발상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브랜드 시장 대신 제조·개발에 주목
윤 회장은 1990년 ‘일본콜마’와 합작으로 화장품 제조 전문회사인 ‘한국콜마’를 세웠다. 당시는 국내에 중소형 화장품 제조기업만 줄잡아 200곳이 넘을 정도로 화장품 제조업은 전형적인 ‘레드 오션’이었다. 대웅제약 부사장을 지낸 윤 회장은 “당시 대부분 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갖고 마케팅에 주력하면서 제조기술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유통과 제조업 시장이 분리될 조짐을 보였다”고 말했다. 후발 주자였던 윤 회장은 브랜드 대신 ‘제조·개발’이라는 영역으로 특화했다.
한국콜마는 시작부터 단순한 제조업체에 머물지 않았다. 주문자로부터 제조법을 받아와 원료만 섞어 판매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는 영원히 하도급업체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윤 회장은 당시 OEM 기업에는 없던 R&D센터를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주로 전기·전자 분야에 많은 ODM(제조자 개발생산) 기업이 화장품 업계에도 생겨난 것이다. 이를 본 브랜드 화장품 기업들은 ‘한국콜마’에서 제품을 납품받기를 꺼렸다. “나중에 자기 상품으로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지, 웬 개발이냐”는 반응이었다.
윤 회장은 제품 생산공정을 현대화하고, 연구인력을 확충하는 등 품질 개선에 오히려 박차를 가했다. 특히 제조기술이 까다로운 기능성 제품과 기초 화장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고급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급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유통만 전문으로 하는 화장품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존 화장품 업체도 제조 대신 마케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효율적으로 제품을 수급하기 위해 제조·개발 전문인 ‘한국콜마’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현재 ‘한국콜마’의 제품이 들어가는 기업은 모두 160여 곳.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보령메디앙스’ 등 굴지의 국내 화장품 기업뿐 아니라 ‘존슨앤드존슨’과 ‘허벌라이프’ 등 글로벌 기업의 이름도 고객 리스트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의 10개 중 2개는 ‘한국콜마’가 만든 것이다.
올해 여성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BB크림’(피부 잡티를 가려 주는 기능이 있으며 발라도 마치 화장을 안 한 것처럼 보임) 뒤에도 ‘한국콜마’가 있었다. 색조 화장을 부담스러워하는 여성이 늘자, 한국콜마는 1년 전부터 BB크림에 대한 연구에 착수해 식약청 허가를 미리 받았다. 그리고 올해 ‘쌩얼’ 열풍이 불자, BB크림은 대박을 터뜨렸다.
한 화장품 회사 관계자는 “하도급업체의 아이디어를 주문업체가 받아들이는 모양이 됐다”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게 한국콜마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자 개발생산 방식을 말한다. 주문자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 방식과 달리, 제조회사가 상품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 생산, 품질관리 등의 공정을 직접 담당한다. 상품에는 주문자뿐 아니라 ODM업체의 이름이 병기된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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