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란 놈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별의별 곳을 다 훑었죠”
대학생 인턴 → 알바 → 인턴… ‘열정 18개월’ 후 당당히 입사
남들 아이디어 10개 낼 때 저는 38개 정도 준비해갔죠
《“인턴이라는 게 시계로 따지면 가장 작은 톱니바퀴겠죠. 하지만 얘가 빠지면 시계가 고장이 나잖아요. 저는 작은 톱니바퀴의 최대치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광고를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진 글로벌 광고회사 TBWA코리아는 광고계 지망생들에게 선망의 일터로 꼽힌다.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TBWA코리아 본사에서 장준호 씨(27)를 만났다. 작년 1월 TBWA에 입사한 그는 현재 제작 1팀에서 아트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아트 플래너는 광고의 비주얼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한다. 촬영 콘티 스케치부터 디자인 콘셉트, 이미지 수정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눈과 맞닿는 광고의 ‘최종 얼굴’을 책임지는 게 그의 업무다.》
○ 남들 4배 아이디어 “열정으로 승부”
그는 TBWA 인턴 출신이다. 하지만 그냥 인턴 출신이라고 하기엔 그 과정이 좀 남다르다. 장 씨는 홍익대 미대 광고디자인과에 재학 중이던 2007년 9월부터 6개월간 TBWA의 대학생 인턴 교육 프로그램인 ‘주니어보드’ 9기로 활동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주니어보드 수료 후 그는 곧바로 TBWA 제작팀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5개월간 일했고, 다시 그로부터 6개월간을 인턴사원으로 일한 끝에 TBWA에 정식 입사했다. 말하자면 1년 6개월이란 기간에 ‘주니어보드-아르바이트-인턴’을 모두 아우른 셈이다. 가히 인턴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이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게 된 건 군 제대 후. “복학을 하니 본격적으로 먹고살 걱정을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진짜 세계’의 모습도 보고 싶었고요.”
그는 TBWA 주니어보드에 도전했다. 그리고 선발이 확정된 뒤 휴학을 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진행되는 주니어보드 활동은 굳이 휴학을 하지 않아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올 인’ 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군대까지 갔다 온 상태라 엄청나게 고민이 됐죠. 하지만 열정의 끝까지 가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휴학을 결심했어요.”
그날부터 장 씨는 매일 인턴 활동이 시작되기 전 “별의별 곳을 발이 아프게” 돌아다녔다. 광고의 핵심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였다. SK텔레콤 ‘T’ 관련 과제가 나오면 ‘T월드’ 매장도 가보고, 직접 점장을 찾아 얘기를 해보기도 했다. 과제와 관계없는 행동도 많이 했다. “이틀 내내 서점에 서서 이런 저런 책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땐 아무 이유 없이 청와대 주변의 효자동 같은 동네를 걷기도 했어요.” 그는 “아이디어란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려 했다”며 “실제 이런 것들이 더 깊은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10개의 아이디어를 준비해 올 때 전 38개 정도는 준비했던 거 같아요. 꾸준히, 최선을 다했죠. 내 열정을 끝까지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다 못 보여주면 되게 후회할 것 같아서요.”
○ 광고는 ‘나’가 아닌 ‘우리’가 하는 일
주니어보드 활동은 주어진 과제에 대해 각자 가져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팀별로 회의를 한 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이를 또 다른 팀과 비교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팀워크가 중요했어요. 최종 결과물을 잘 만들려면 각자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극대화해서 ‘최상의 합의점’을 찾아야 했죠.”
이견을 조정하고 아이디어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유연함이 굉장히 중요했다”며 “이런 부분에 잘 대응한 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장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내내 침착하고 편안한 말투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전에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배운 가장 좋은 기회였어요. 광고라는 게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각자 가진 생각이 있죠. 하지만 혼자서 하는 건 광고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광고는 ‘우리’의 아이디어가 ‘화학적으로’ 결합돼서 모두가 ‘아, 이거다!’ 하는 아이디어로 완성될 때 대박이 나요.”
그는 “당시 대안 없이 (남의 아이디어에) 브레이크를 거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의심을 하기보다는 그 의견을 보강할 수 있는 아이디어나 열정을 준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주니어보드 활동 기간이 끝날 때쯤 운 좋게 회사 제작본부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하나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밤을 새워 급히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죽어도 하겠다’고 주장해 면접을 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도 장 씨는 ‘열정’과 ‘팀워크’를 잊지 않았다. 그러자 인턴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그는 당시 ‘쿨’한 광고로 화제가 됐던 현대카드와 캐논의 광고에도 참여했다.
“걸핏하면 밤을 새우는 광고 일이라는 게 ‘정말 내 길일까’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광고에 제 목소리가 반영되고 결과물이 세상에 뿌려져 좋은 반응을 얻을 때만큼 큰 희열이 없더라고요.”
결국 TBWA에 당당히 입사한 그. 1년 6개월이란 긴 시간은 회사뿐 아니라 장 씨에게도 스스로의 길을 검증할 기회였던 셈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광고계 취업 장준호 씨의 조언
공모전만이 살길? ‘나만의 무기’가 진짜 살길!
바늘구멍보다도 좁다는 광고계 취업. 인턴십 외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생생 정보들을 장준호 씨에게서 들어봤다.
▽공모전만이 살길이라는 편견을 버려라=광고계 취업을 희망하는 많은 대학생이 공모전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공모전은 하나의 수단이다. 공모전에 모든 걸 거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생각’을 열심히 찾는 태도가 중요하다. 한 예로 업계 선배 중 하나는 공모전과 관계없이 ‘블로그’를 잘해서 채용됐다.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과 아트워크를 꾸준히 올렸는데, 그 열정과 독창성이 입소문이 나면서 회사의 구애를 받아 채용된 경우다. 광고계에 오려는 사람은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그만 무기여도 상관없다. 그러나 하나쯤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모전, 수상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팀워크를 배워라=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면 ‘팀워크’를 강조하고 싶다. 공모전의 가장 좋은 점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회의 과정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수상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나도 100번 넘게 도전해서 상을 탄 건 20번 정도다. 참고로 어머니에게 물어 “재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명쾌해야 수상 실적이 좋았다.
▽광고학·광고디자인 등 관련 전공을 해야만 광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광고계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광고인이 되겠다고 광고학만 들여다봐서는 오히려 아집이 생길 수도 있다. 광고인들 중에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인턴 중에는 의대 출신도 있었다. 광고계도 세상의 다른 쪽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라. 출처:동아일보 1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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